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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Mar 09. 2024

허버트의 Dune, 빌뇌브의 Dune

영화와 소설 (2)


Frank Herbert의 Dune 시리즈는 20세기 SF의 대표작으로도 유명하지만, 과거 영화화 실패담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사실 영화화에 성공한 SF 혹은 장르 소설들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원작이 등장인물을 구체화시키거나 서사를 완벽하게 만들기 어려운 단편이기 때문에 혹은 원작인 장편이 그 얼개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아, 오히려 감독에게 많은 창작의 자유를 주는 경우들이다. 특히 Hollywood의 성공적인 SF영화들은 50년대의 단편 소설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 유명한 2001 Space Odyssey의 경우 Arthur Clarke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이 있으나, 실은 소설과 영화가 동시에 만들어졌고, 그 근저에는 Clarke의 1951년 단편인 The Sentinel라는 뼈대가 있는 경우이니 전자에 가깝다. 혹여 The Godfather의 원작을 읽어본 분들이 있으면 공감하실 터인데, 전개의 과정과 사건들의 나열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그 글의 수준은, 즉 인물들에 대한 묘사나 서사의 느낌에서는 사실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또 다른 성공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영화 Bourne 시리즈의 경우, 그저 그런 소설 원작들과 이보다는 훨씬 잘 만들어진 영화들 사이의 공통점이 주인공 이름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Dune의 영화화가 연이은 실패를 거듭했던 것은, 어쩌면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Denis Villeneuve감독이 영화화한 것은 이 시리즈 첫 권을 두 편의 영화로 나누어 제작한 것인데,  총 3부작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소설의 2권에 해당할 3편까지 만들어져야만 어느 정도 서사가 완결되는 셈이라 이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Arrival과 Blade Runner 2049에서 보여준 Villeneuve의 능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3부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흥행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조금은 무난했던 첫 영화를 본 지 3년, 지난주 드디어 개봉한 영화 "듄 파트 2"는 감독이 원작소설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얼마나 영리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그래서, Herbert의 Dune보다는 Villeneuve의 Dune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적절하다.




Dune의 세계관은 지금으로부터 2만 년 후 은하 전체로 퍼져나간 인류 문명을 상정한다. 인공지능과의 전쟁(소스에 따라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다른 입장을 가진 세계들 사이의 전쟁)을 거친 후 인류는 기계로 만든 인공 지능 즉 Thinking Machine을 터부시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생명체 자체의 능력을 극도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는 설정이다.


Dune이라고도 알려진, 사막으로 뒤덮인 불모지인 행성 Arrakis에서 제국 내 거대한 충돌이 있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여기서만 생산되는 스파이스라는 물질에 있다.  우주 비행선의 궤적을 컴퓨터로 계산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대신 Guild Navigator 조종사들의 짧으나마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 능력은 지배층이 소비하는 일종의 마약인 스파이스가 주는 선작용 중 하나라는 설정이다. Guild Navigator들은 스파이스가 가득 녹아들어 간 물탱크 속에서 생존하는, 마치 물고기처럼 변형된 존재로 묘사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설정은 은하 제국의 지배구조를 매우 복잡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황제와 귀족들의 막강한 군사력도 Spacing Guild의 협조 없이는 인류가 퍼져 사는 수백만 개에 달하는 세계 중 하나인 자신들의 행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Spacing Guild의 우주여행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스파이스이기 때문이다. 행성 하나에 불과한 Arrakis를 통제하면, 특히 스파이스를 만들어 내는 존재로 시리즈에서 점차 알려지게 되는 Worm이라는 사막 생물을 통제할 수 있으면, 황권조차 압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Bene Gesserit이라는 고도로 훈련된 여성 집단 역시 이 스파이스의 능력을 사용하여 제국 내의 파워 게임에 참여하는데,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지를 축적하고, 우생학적으로 계획된 결혼과 세포 수준까지 자신들의 몸을 조절하는 이들이 임신을 통하여 제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종하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신념이고 임무이다. 이야기는 이 Benne Gesserit이 기다려온 우생학적인 최종 목표이며 (유전적으로 승계된다고 설정되는) 선조의 기억을 모두 담은 남성인 Kwisatz Haderach이라는 일종의 메시아와 같은 존재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출현한 Kwisatz Haderach은 과거뿐만이 아니고 수많은 먼 미래의 가능성들에 대한 "기억"도 함께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운명과 자유의지라는 기독교 문화 안에서 끝없이 회자되는 철학적 문제들을 건드리게 된다. 수백억 명의 희생이 수반되는 새로운 Jihad가 일어나는 미래를 인지하고 있지만, 인류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이를 Golden Path라고 부르고 따라가는 (Kwisatz Haderach가 된) Paul Atreides와 그 아들, 그리고 이들에 저항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수천 년의 호흡으로 담아낸 것이 Dune시리즈의 이야기이다.




사실 첫 권인 Dune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만 보면 다른 SF작품들에 비하여 특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Arrakis의 새 주인으로 이주하는 Atreides가문, 타의에 의하여 이곳을 떠나는 Harkonnen가문의 반격, 그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는 Corrino가의 황제, 그리고 사막의 Worm과 공존하면서 살아온 원주민들인 Fremen까지, 이 네 그룹 사이의 투쟁 이야기이고 그 골격은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이런 Saga들의 백미는 무엇보다 세계관이 아닐까? 이 첫 권에서는 사실 Dune 세계관을 만들어내는데 대부분의 지면이 할애되는데, Herbert는 이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를 이야기의 진행 안에서 자연스럽게 창조해 내는 엄청난 철저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The Lord of the Rings 그리고 (Ursula Le Guin의) Earthsea Cycle정도 이외에는 본 적이 없는 그런 수준이다.


이 시리즈엔 신의 한 수와 같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설정이 있는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Thinking Machine과의 전쟁, Butlerian Jihad이다. 흔한 SF와는 전혀 다른, 마치 중세시대를 보는 듯 한 결을 가진 이 미래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초석이며, 이로 인해 인간의 특정 능력을 극한까지 확대한 직업군들이 있어야만 했고, 이는 곧 개개의 인물들이 그 비중에 크게 상관없이 명확히 정의되고 묘사되는 Herbert의 글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전부 사막으로만 이루어진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행성  Arrakis의 역할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한다. Fremen이라는 사막족이 사막의 절대자인 Worm과 공존하며 이 혹독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이 변방의 전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깊게 각인된다. 이는, 이들이 어떻게 은하 전체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황제의 특수부대 Sardaukar를 가볍게 제압하고 종국에는 수백만 개의 행성을 복속시키며 그 과정에서 수백억의 인류를 희생시키는 Jihad를 펼치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하는 감탄할 만한 문학적 장치가 된다.


앞부분, Bene Gesserit과 Guild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조금씩 힌트가 나오는 유전적 기억과 예지 능력에 대한 떡밥은, 또 다른 의미의 세계관, 즉 실체를 가진 3차원의 물리적인 세상의 지금 모습뿐만 아니라,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이 더해지면서, 인간 세상의 운명에 대한 4차원의 이야기까지로 그 세계관이 확장된다. 대부분의 미래가 인류의 멸절로 끝난다는 사실, 그래서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인류의 생존을 담보하는 차악을 향해 나아가는 Paul Atreides의 이야기에는, 흔하디 흔한 "주인공 보정"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설득을 당하게 된다.




Herbert의 거대한 세계관, 그리고 그 안에서 인류의 미래를 보존해야 하는 의무를 온전히 혼자 떠안는 Muad'dib, 즉 Paul Atreides와 그 아들의 운명은 사실 좀 지나친 거대 담론의 느낌이 없지 않다. 덕후들에게야 그만큼 더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중의 감정 이입이 가능하기에는 말이다. 원작을 뛰어넘는 대중 영화를 만들어내는 빌뇌브가 이를 놓칠리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서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개개 인물들의 이야기를 부각하고 새로운 디테일을 부여하여 조금 더 설득에 중점을 둔 영리한 각색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듄 원작 시리즈 전체에서의 Muad'dib은 선지자에 가까웠. 스스로는 그 길을 피하고 싶지만, 육백억 명의 인류가 희생되 90여 개의 행성이 파괴된다는 성전의 시작점 그이지만, 직접 이를 명령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다. 선택이 가능한 모든 미래를 한꺼번에 보는 그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선택의 의미가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택 아닌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무게를 온전히 떠안아야만 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그는 선지자를 너머 신적인 존재라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의 Muad'dib은 수만 년 후까지의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Golden Path"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프레멘들의 존엄과 아트레이디스의 생존을 위해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사이다. 황제 즉위를 인정할 수 없 Great House들을 향해 성전을 선포하는 모습도, 실은 전사의 그것다. 그래서 오히려 더 공감이 가능하다. 이렇게 영화를 맺는 것지극히 의도적으로 감독 스스로 설정한 제한이었을 것이다. 두드러진 이룰란과 홀로 선 전사로서의 챠니는 특히 빛나는 선택이었고, 보일 듯 안 보일 듯 숨겨놓은 알리아, 그래서 클라이맥스에서 폴에게 시선을 모아주어 단순화한 것 역시 흡인력을 한층 끌어올린 방법이었다.


전면에 나온 이룰란과 챠니, 그리고 신비롭게 남겨둔 알리아는, 원작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될 것으로 보이는 3편을 이끌어 갈,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아껴두어야 할 인물들이기도 하다. 특히 성전의 시작을 뒤로하고 혼자 떠나기 위해 모래 벌레를 부르는 챠니, 굳건히 움켜쥔 그녀의 양손이, 3편에서 단지 황제의 concubine이 아닐 것 임을 약속한다. 듄의 이야기는 2권에서 조금 그 느낌이 달라지는데, 그 플롯의 스케일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유전자로 생된 컨 아이다호의 출현과 관련된 새로운 빌런들의 등장 등은 무언가 이야기가 샛길로 삐진다는 느낌이 많았고, 이는 듄 시리즈의 4권 이후 이야기가 그 설득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이 묘한 부분을 마지막 3편 영화에서는 다른 이야기로 대치하지 않을까 기대하는데, 여기에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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