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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Aug 15. 2021

하늘을 난 엄지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숲 속에 살고 있는 어떤 부인이 요정의 마법이 깃든, 작지만 단단한 보리 낟알을 주었다. 부인은 그 보리 낟알을 화분에 심었는데 곧 싹이 움트더니 예쁜 꽃봉오리로 금세 자라났다. 그리고  꽃잎을 틔우더니 아주 작디작은 소녀가 꽃 안에 잠들어 있었다. 엄지손가락 반도 채 안 되는 크기여서 부인은 그 소녀에게 ‘엄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시간이 지나 엄지는 연약해 보이는 작은 몸집과는 달리 활동적이며 모험심이 강한 아이로 자라났다. 

식탁 위에 있는 호두껍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다음 깨진 호두껍질을 이용해 자신의 침실로 사용하는가 하면 떨어진 꽃잎을 주워 물 위에 띄운 뒤 엄지만이 탈 수 있는 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가 없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중 엄지는 숲 속에 떨어진 말의 털들을 주워 노를 만들었고 이를 사용해 호수 가운데까지 항해하기도 했다. 그런 작디작은 엄지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늘 여름마다 찾아오는 제비였다. 여름이 되면 엄지가 사는 숲 속에  제비가 찾아와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푸른 숲을 덮는 하늘을 날자 -  멀리멀리 날아 보자 - 

엄지는 말 털로 만든 노를 저으며 제비와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때면 숲의 나무들은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었고 호수 속에 있는 물고기들 또한 빙글빙글 춤을 추듯 헤엄쳤다. 

 “이 숲 너머의 세상은 얼마나 넓니?” 엄지가 늘 이런 질문을 할 때면 제비는 있는 힘껏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내 날개로 다 못 담을 만큼 엄청 넓어! “ 엄지는 숲 너머 얼마나 더 큰 세상이 있을지 상상하며 잎으로 만든 공책 위에다가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찾아오던 제비가 찾아오지 않자 엄지는 제비를 걱정했다. 그래서 엄지는 용기를 내 제비를 찾으러 한 발자국씩 숲 밖을 나섰다. 앞으로 천천히 걷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두꺼비가 나타나 엄지의 길을 가로막았다. “너 제비를 찾고 있는 거지? 내가 제비가 있는 곳을 안단다. 제비는 가시덤불에 날개 한쪽이 찢겨 그만 성격 나쁜 두더지 동굴에 떨어졌지 뭐야. “ 

제비가 다쳤다는 말에 엄지는 크게 걱정했다. 더구나 성격 나쁜 두더지 동굴에 떨어졌다니. 어떻게 두더지 동굴을 찾아갈 수 있을까? 

“내가 길을 안내해 줄 터이니 날 따라와!”  하지만 이는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려고 하는 두꺼비의 함정이었다. 두꺼비는 엄지를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가 큰 연못 위에 떠 있는 연꽃 위에 데려다 놓았다. 

“이런 큰 연꽃 위에 엄지를 데려다 놓으면 무서워서 아무 데도 못 가겠지?” 그리고 홀연히 두꺼비는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두꺼비의 배신에 엄지는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연꽃잎 위에 있다고 엄지는 무섭지 않았다. 연지는 늘 가지고 다니던 여분의 흰색 말의 털을 엮고 엮어서 좀 더 크고 단단한 노를 만들었다. 

“흥. 두꺼비 녀석, 난 평소에도 꽃잎 배를 띄어  호수 한가운데까지 항해를 해 봤다고” 

엄지는 연꽃잎 위에서 힘껏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연못 속 물고기들이 나타나 엄지가 탄 연꽃을 뒤에서 힘껏 밀어주기 시작했다. 

“엄지야. 우린 여름마다 너와 제비의 노래를 듣고 있었단다! 제비는 날개를 다쳐 두더지 동굴에 있어! 우리가 그 동굴까지 힘을 보탤게!” 물고기들의 도움으로 엄지는 더욱더 힘을 내어 노를 열심히 저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제비의 노랫소리였다. 엄지는 물고기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어떤 작은 집이 있었는데  들쥐 아주머니의 집이었다. 엄지가 들쥐 아주머니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풍뎅이가 나타나 엄지를 가로막았다. “너 제비를 구하러 온 거지?? 그렇게 들쥐 아주머니한테 다가가면 안 돼! 들쥐 아주머니는 무척 경계심이 심해서 엄지 널 물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제비를 구해야 해!” 

“달이 뜨면 들쥐 아주머니는 침대로 잠을 자러 가! 들쥐 아주머니가 울타리 밑에  두더지 동굴로 가는 비밀 통로를 파 놓았는데 그때 그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 풍뎅이는 이 말을 하면서도 저렇게 작은 몸집의 소녀가 과연 제비를 구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홀연히 날아가 버렸다.

엄지는 풍뎅이의 말대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정말로 달이 뜨자 들쥐 아주머니는 불을 끄고 침대로 잠을 자러 갔다. 엄지는 살금살금 두더지 통로로 가는 비밀 통로로 조용히 들어갔다. 점점 깊숙이 들어갈수록 제비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노랫소리를 따라 걸음을 계속 옮긴 끝에 날개를 다쳐 누워 있는 제비를 발견했다. 

“제비야!” 엄지는 제비의 아픈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제비를 꼭 안았다. 

“엄지야. 날 구하러 와줬구나. “ 제비는 힘 없이 날개를 축 늘어뜨리며 인사했다. 엄지는 눈물을 닦고 굳은 결심의 표정으로 말했다. “제비야 이제 걱정 마! 내가 널 구해 줄게! 이런.. 제비한테 먹을 걸도 필요하겠는 걸.. 다시 밖으로 나갔다 와야겠어 “ 

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 풀잎에 시원한 이슬을 담고 제비의 찢긴 날개를 묶을 단단한 꽃의 줄기도 구했다. 뿐만 아니라  땅에 떨어진 과일을 높이가 있는 바위 위로 굴린 다음 다시 과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깨진 과일 조각들을 다른 풀잎에 담아 다시 제비에게로 가서 먹을 것들을 나눠 주었다. 그렇게 엄지의 보살핌 덕분에 제비는 점점 평온한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지와 제비는 고이 잠이 들었는데 그만 성질 나쁜 두더지가 엄지와 제비를 발견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누가 내 집에 함부로 발을 들였지! “ 

“엄지야! 빨리 내 등위로 올라와!” 엄지는 제비의 등 위로 올라가 제비를 꼭 안았다. 그리고 제비는 있는 힘껏 날갯짓을 하여 천장을 뚫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엄지는 제비를 꽉 붙잡으며 난생처음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눈앞에는 솜사탕 같은 흰 구름과 호수보다 더 넓은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그리고 밑을 내려다보니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제비야! 숲과  땅이 한눈에 다 보여!” 엄지는 감탄하며 소리쳤다. 엄지가 내려다본 세상은 엄지가 늘 상상했던 것보다 더 푸르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비의 두 날개를 넘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제비와 엄지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늘을 날며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푸른 숲을 덮는 하늘을 날자 - 멀리멀리 날아 보자 - 

엄지와 제비는 더 넓은 따뜻한 남쪽으로 향했다. 엄지와 제비는 앞으로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세상을 끌어안을 만큼 더 크고 더 아름다운 날개를 펼쳤으니까 말이다. 




[작가의 말] 

인간은 살면서 자신이 가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 하며 동경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물며 엄지 손가락도 채 반도 되지 않는 엄지는 그 마음이 더 크고 넓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원작과는 달리 모험심이 강하고 당찬 엄지를 그려 보았습니다. 또한 제비와의 우정을 통해 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는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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