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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직장인 Jan 31. 2024

Zero to One

리셋되었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했다.

즐거웠던 3개월이 끝나갈 즈음, 다시 나의 강점에 대해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1. 영어를 원어민처럼은 아니지만 할 줄 알고

2. 사람 만나서 토론하는 걸 즐기고

3. 자리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활동적인 일을 좋아한다.


이 3가지를 생각해 봤을 때 생각나는 직무는 '해외영업' 뿐이었다.


영어나 외국어 좀 한다는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즈음은 꿈꿔본다는.


하지만 '카더라' 소문에 해외영업이라는 직무는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어야 하고 

학벌이 좋아야 한다고 들어서 고민이 됐다.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마치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시간이 걸려도 재수를 할 것이냐, 점수 맞춰 대학교에 입학할 것이냐의 고민과 비슷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기업에 원서를 쓸 것이냐 아니면 직무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 사실 직무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중소기업은 연봉도 낮고 업무환경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 수업시간에 '중소기업경영론' 이라는 과목에서 '히든챔피언'에 대해 공부해볼 기회가 생겼다. 히든챔피언이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탄탄한 기업들을 말하는데 보통 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 많이 보인다. 우리가 아는 탄탄한 외국계 회사들의 본사도 잘 살펴보면 수도에 있는게 아니라 지방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히든챔피언을 찾아 보는 것이 과제였고 '지속가능한' 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던 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헬스케어 산업군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기업을 찾았다. 그리고 과제를 작성했다. 



과제를 하다 보니 점점 이 기업에 대해 매료되었고 입사지원까지 하게 되버렸다.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성검사를 먼저 보러 오라고 했는데,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시험 공부에는 큰 뜻이 없었던지라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면접이 잡혔다.


이번에도 인턴 면접과 같이 쟁쟁한 후보자가 많았다.

처음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게 된 지라 준비는 많이 못했지만 오히려 망해도 된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왔다.


그런데 웬걸.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고등학교도, 인턴도, 첫 직장도 다 면접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는데. 면접 말하기가 나의 장점이란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인턴 때처럼 열심히 했다.

문과생이지만 의료기기 회사에 입사한지라 잘 이해도 안되는 생물 등 과학 관련된 공부를 해야 했다. 공부를 좋아하진 않지만 일 때문에 하는 공부는 또 하게 되더라. 정말이지 난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OJT에서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과제도, 도대체 뭘 하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할 줄 아는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회사 생활도 너무 즐겁게 했다. 해외영업부였기에 출장이 잦았는데, 남들은 명절때 해외 출장가면 싫어했는데 나는 오히려 대체휴가도 나오고 하니 좋다면서 다녔다. 그래서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출장길이 시작되면 하루에 몇시간 못 자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그조차 즐거웠다. 심지어 영국 출장 가서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히드로 공항에서 미팅만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대학생때부터 꿈꿔오던 커리어우먼이 된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회사의 대표주자로 파트너사와 미팅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뿌듯했다. 



원하는 직무였기도 하고 책임과 권한이 꽤 많이 주어질 수 있는 그런 환경이어서 숫자에 대한 압박은 있어도 행복했다. 부사장님이 왜 회사 다니냐 하면 행복해서 다닌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2년즈음 흘렀을까.


매일 아침 눈떠서 회사 가는게 행복했던 나는 어느날부터 회사 가기가 너무 싫어졌다. 일이 싫은 건 아니었다. 조심스럽지만 솔직히 이야기하건대, 사람 때문이었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회사에 없었다. 10년 후 모습이 저 사람같다면 어떨까? 하고 그려봤을 때 확실히 결심이 들었다. 떠나야 한다.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참을성이 부족해서였을까, 혹은 실행력이 좋아서였을까. 퇴사를 과감하게 결정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취업난이다 어디 갈 데를 알아보고 나와라.”

“2년 반 다녔으면 6개월만 더 버티고 퇴직금 1년치 받아라”


하지만 앞으로 6개월 더 다니는 것보다 안 다니고 지금 퇴사해서 준비해서 6개월 후에 새로운 곳에 가는게

그게 오히려 시간을 아끼는 길이겠다 싶어서 무작정 퇴사를 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버킷리스트 였던 유럽 한달살기를 하러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유럽 한달살기 그 자체가 버킷리스트 였다기보다 나를 위한 한달간의 온전한 휴식 시간 이 버킷리스트 였다. 이 때 아니면 언제 쉬어보겠냐 하면서.


퇴사한 이유가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재밌게 미쳐서 일하려고 나온 것이니 

지금 쉬어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20살부터 시작된 나의 질문과 함께

내 커리어는 또 다시 리셋되었다.


"나 뭐 하고 싶지?

나 뭐 하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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