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페세 Feb 07. 2024

돌아보는 내 뒷모습

아름다우면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굳이 기억될 필요 없는 내 모습 아닐까?

노란색 메신저 없이 살 수 있을까? 살 수는 있겠지. 불편을 견디고 관계 단절을 감수한다면. 일상 대화 말고 일할 때도 PC 화면에 대화창을 여럿 열어 놓는다. 업무 협의나 자료를 주고받을 때, 작업 컨펌을 받을 때도 편하니까. 간단한 자료를 스크립해 둘 때 나와의 채팅 기능을 쓰면 무척 쓸모 있다. 


그러다 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아이고. 남에게 이런 사진을 떡하니 보여주고 있었구나. 불쑥 낯이 간지러웠다. 내 것인데 나는 못 쓰고 남이 쓰는 내 이름처럼 프로필 사진도 남이 매일 보고 있었구나. 왜 못했을까, 이 생각.


전화를 걸면 음악이 나온다. 컬러링이다. 열에 대여섯 정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화 대기음으로 깔아 놓는다. 문제는 강제로 듣는 음악이 늘 좋은 건 아니라는 점. 기껏 취향에 맞춰 곡을 골랐을 텐데 정작 자기는 듣지도 못하면서 뭐 하러 음악을 깔아 놓을까? 취향 인증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전화 건 사람 귀에 맞지 않으면 그저 소음일 뿐. 전화를 늦게 받거나 안 받으면 강제로 들어야 하는 고역이 따른다.


자주 통화하는 사람 컬러링이 매번 거슬려 한번은, 하드록 음악은 싫더라고요 슬쩍 말했는데 정작 자기가 그런 음악을 깔아 놨는지도 모르고 있더라. 특정 종교 음악도 마찬가지. 상대방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컬러링은 자기 표현이라지만 싫든 좋든 강제로 들어야 하는 건 이쪽 몫인데 말이지.


내 뒷모습을 나는 못 본다. 뒤통수에는 눈이 없고 거울이 있어도 못 본다. 머리를 자를 때마다 납작하고 못생긴 내 뒤통수 머리가 어떻게 다듬어졌는지 궁금하다. 뒤쪽 머리가 소중하다. 내가 아닌 남이 보는 내 것이니까. 남의 눈을 신경 쓰며 사는 건 피곤하지만 남의 눈을 굳이 신경 쓰며 사는 세상이 명랑하고 평화롭다. 그렇게 생각한다. 길바닥에 남 시선 따위 상관없는 사람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차도 그렇다. 뒷모습이 중요하다. 자동차 디자인은 앞모습 옆모습이 아무리 멋지고 균형 잡혔어도 뒷모습이 이상하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디자인은 그렇다 치고 더러운 차체, 뒷유리에 두텁게 낀 흙먼지를 그대로 두고 달리는 해치백, SUV들을 보면 내가 답답하다. 차를 세우고 가서 걸레로 닦아주고 싶다.


그보다 갑갑한 건 밤에 불을 끈 채 달리는 앞차. 환한 도심도 아닌 외곽 도로에서 후미등을 끈 채 앞서가는 차를 만나면 아찔하다. 데이라이트 기능이 있어 겨우 앞이 보이니까 그러는 걸까. 생각이란 걸 하고 운전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한심한 건 난폭하고 무례한 운전. 이런 꽁무니 행적은 블랙박스가 아닌 뒤차 운전자 시야에 예민하게 저장된다. 한바탕 욕도 기록되겠지. 지금은 못 들어도 언젠가 그 욕, 무신경한 뒤통수에 예리하게 날아가 꽂힐지 모른다.


남이 보는 내 뒷모습이 눈에 띄게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그보다 좋은 건 모르는 남에게 기억될 필요 없는 뒷모습이다.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차를 세울 때까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 기록될 필요 없는 내 뒷모습. 이것이 차에서 내리는 아름답고 바람직한 내 모습이 아닐까, 나는 되돌아본다.


사진: Marc Kleen, Unsplas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