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힘이 세다

우리가 냄새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

by 수페세

엘리베이터 5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데 손 하나가 쑥 들어온다. 급히 열림 버튼을 누르자 노인이 탄다. 5층, 노인이 어깨로 나를 밀치고 내리더니 이비인후과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늘 아침, 이러한 이유로 나는 접수 순서대로 앉는 진료 대기 의자에서 두 노인 사이에 끼어 앉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무례를 당연한 권리쯤으로 아는 밉상들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만 주제에서 벗어나지는 말자. 지금은 냄새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비슷한 연령의 노인들 틈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똑같은 냄새가 양쪽 코에 맡아졌다. 노인 냄새다. 나이가 들면 왜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남자나 여자나 사람을 불문하고 똑같다. 몸에서 나는지 입에서 나는지 옷에서 나는지 모를 노숙한 사람의 냄새. 아직 젊다면 누구나 질색하리, 이 냄새.


박완서 선생이 어릴 적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풍을 앓는 할아버지가 침 닦는 삼베 수건에 싸 둔 눅눅한 한과를 먹으라고 내밀 때, 사랑받던 손녀로서 그걸 받아먹어야 하는 난감한 기분에 대해서 썼는데 너무 공감이 되었다.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난다던 삼베 수건이 그 순간 너무도 생생히 느껴졌다.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늙어가는 냄새는 비누로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무른 살 냄새고 얕은 숨 냄새며 묵은 땀의 냄새다. 못내 싫으면서도 고개를 아주 돌리지는 못하는 오래된 시간의 냄새. 어느 인생도 끝내 피하지 못하리라, 이 냄새. 진한 향수를 덧뿌린다 해도.


냄새는 힘이 세다. 어떤 냄새는 맡는 순간 시공을 건너 그 시간, 그 장소, 그 장면의 기억을 정확히 소환한다. 길을 걷다 공기 중에 흘끗 맡아지던 계절의 냄새. 이른 봄, 들판 가득 들불 타는 냄새. 늦가을의 마른 숲 냄새. 저녁나절 골목길 낮은 지붕 아래서 나던 밥 냄새. 비 오는 공원을 걷다 밟은 젖은 지렁이 냄새. 눈 오는 날, 고색창연한 노포의 매캐한 연탄불 구이 냄새. 복도를 스쳐 지난 누군가의 흔적에서 알아챈 옅은 향수 냄새까지. 어떤 냄새는 매번 ‘어?’ 하면서 기억의 감각을 일깨운다.


냄새는 힘이 세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백화점 1층과 공항 면세점을 향수 냄새로 가득 채운다. 빵집은 갓 구운 식빵 냄새로, 카페는 신선한 커피 향기로, 옷 가게는 이국의 오렌지 향으로 지나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고급 차는 시트에서 질 좋은 가죽 냄새를 풍긴다. 영리하게 조향한 냄새지만 인공인지 아닌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힘센 냄새 덕분에 매출액 바늘이 위로 움직인다. 한때 잡지 갈피에 향을 뿌린 삽지 광고가 유행했는데, 덕분에 나도 어느새 특정 브랜드 향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냄새 중 하나는 마른풀 냄새다. 정확히는 풀이 말라가는 냄새. 바로 이맘때면 도시 곳곳에서 쉽게 맡을 수 있다. 서울의 올림픽대로는 내가 알기에 연중 두 번 정도 도로변의 풀을 깎는데 차를 타고 지나며 일찌감치 알아챌 수 있다. 아하, 또 풀을 베는구나. 생풀이 잘리며 흩날리는 풋것의 냄새를 송풍구 외기유입 모드에서 미리 맡는다. 비릿한 풀의 체취는 볕에 한나절만 마르면 고소하고 포근한 냄새로 바뀐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읽은 하이디는 알프스 산꼭대기 오두막에서 살게 되는데, 할아버지가 깔아준 푹신한 건초더미에서 잠을 자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마른풀 냄새는 불안을 잠재우는 냄새다. 절망에 처한 소녀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냄새. 이해가 부족하다면 곧 맡아보시길.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 것은 집 냄새가 아닐까 싶다. 외출에서, 또는 여행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 때 훅 맡아지는 우리 집 냄새. 음식이나 꽃 향기, 방향제 따위가 아닌 자기 집에서만 나는 고유한 집의 냄새가 있다. 이제 위험은 사라졌다고 알려주는 냄새. 아주 잊었다가도 문만 열면 ‘아, 집에 왔구나’ 하게 되는 바로 그 냄새. 가만 숨어 있다가 때맞춰 풍기는 냄새. 오늘도 맡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밉상의 노인 냄새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가장 좋은 냄새 역시 사람에게서 난다. 향수를 뿌렸거나 화장품을 발랐거나 섬유유연제를 썼거나 보디 오일이 남았거나 이 모든 것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간에 오직 그 사람에게서만 나는 특별한 냄새. 이 냄새로 인해 그를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하기 때문에 그 냄새가 좋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오늘 가장 좋은 냄새를 맡았다. 달큼하고 절로 눈이 감기는 단감 냄새. 무엇이든 용서되는 냄새. 사랑하는 사람의 아늑한 냄새다. 바라건대, 내게도 그런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어느 날, 내가 간신히 노인이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