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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Aug 05. 2024

금호동, 금호강

#금호동의 달 #서평단 #김정식 작가 #이유출판

#금호강

금호강은 내가 일곱 살부터 중학교 2학년 열다섯까지 살았던 대구 동촌에 흐르는 강이다. 도심에서 버스로 사십여 분 달리면 만나는 강. 아양교 다리를 건너면, 도시지만 시골읍내 같은 풍경으로 휙 바뀌던 동네. 나의 소년기 기억은 거의 그곳이 배경이다.  


#금호동

1970년 다섯 살이던 김정식 작가와 가족이 경북 소도시에서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이던 금호동으로 이사를 다. 계산해 보면 작가는 65년 또는 66년생이다. 형뻘이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고 비슷한 시대를 겪으며 자랐다.


금호동은 1995년에도 달동네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금호동 옆동네 옥수동에서 1년을 살았다. 내가 살던 집은 단국대 뒤편 언덕 위 다세대 주택이었고, 내리막 도로를 따라 한 정거장쯤 내려가면 금호동 시장이 있었다. 시대극에서 볼 법한 시끄럽고 지저분한 시장 정경 그대로였다. 그 무렵 유행하던 드라마 '서울의 달' 촬영지가 금호동이라고 들었다. 가난한 서민 이야기를 주로 쓴 김운경 작가의 작품이었고 극 중 인물들이 살던 달동네가 바로 금호동이었다. 90년대에도 그랬으니 7, 80년대는 어땠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금호강

여름이면 강에서 빨간 고무다라이를 배 삼아 타고 놀았다. 이끼 낀 강변 바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다니며 고디를 잡았다. 길고 여름 해가 저물 때가 돼서야 겨우 배고픔을 깨닫고 집으로 내달렸다. 낙동강 지류 중에서도 제법 큰 금호강도 한겨울이면 꽝꽝 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무 판때기를 주워 얼기설기 어설픈 못질로 썰매를 만들고 철사를 끼워 썰매날 삼았다. 볼이 빨개지고 손등이 쩍쩍 갈라질 때까지 썰매를 타고 놀았다.


#금호동

한두 평짜리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금호동 시장통에 어린 정식의 가족이 살았고, 장사를 했다. 가난할수록 더 많은 시간과 근육을 밥벌이에 써야 하는 법이다. 부모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급급했을 터. 저자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다. 걷기 힘들 만큼의 후유 장애. 늘 혼자 집안에 머물거나, 불편한 한쪽 다리를 손으로 눌러 페달을 밟으좁은 시장통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던 어린 정식 곁에는 다정한 마음의 친구들과 따뜻한 심성의 가족과 이웃들이 있었다.


#금호강

집에서 두 정거장쯤 걸어가면 장미 만화방이 있었다. 같이 놀 동네친구가 없던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허구한 날 갔다. 만화잭은 기본이고 더 읽을 게 없어지면 어른 소설도 읽었다. 제재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다. 


금호강소년은 늘 혼자였다. 국민학교, 중학교 전부 집과 멀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여 걸리는 거리. 우리 집까지 놀러 오는 학교친구는 거의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있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기억이 흐릿하다.

동네에는 나이 많은 어른들만 보였다. 그 동네에도 국민학교가 있었지만 먼 곳으로 통학하는 나하고 놀아줄 또래 친구는 귀하디 귀했다. 금호강에서 놀던 기억을 되짚어 봐주위에 친구의 모습은 없다. 강가에서, 얼음 위에서 나는 맨날 혼자 놀았을까. 그랬을 리가 없디. 친구들이, 사람들이 기억에서 지워진 건지도 모르겠.


#금호동

장애가 있는 아이, 생계에 쫓기는 가난한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 많이 배우지 못했을 형, 누나, 어른들에 둘러싸인 환경. 불우하힘들었다고 썼어도 충분히 이해가 됐을 게다. 그런데 '금호동의 달'은 따뜻하다. 왜일까.

살면서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기 마련이고 때론 아팠던 일이 오래 기억된다. 내게 그 기억은 따뜻하다. 설거지를 하다 들어와 내 이마를 짚던 어머니의 서늘한 손, 옆에서 가엾게 쳐다보던 할머니의 눈빛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나를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은 아팠던 기억을 따뜻하게 만든다. 지금도 가끔 눈자위의 곰보 자국을 만지는 건 아마도 그 기억들이 사라지지 말라고 붙잡고 싶어서가 아닌가 싶다. 기억은 늘 조금씩 사라져 가지만 어디선가 온기를 품고 숨어 있다. 차갑고 따뜻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을이 오면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온기를 머금고 슬그머니 찾아온다. P. 232

-<금호동의 달 / 김정식 저>-


사람이 있었다. 정식을 둘러싼 가난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차가웠을 어린 시절 기억을 데워 따뜻한 추억으로 만들었다.  




책을 덮고 오래 생각했다.

나의 금호강엔 늘 나만 있다.

이 기억은 믿을 만 한가.


하늘도 창백하게 질릴 만큼 태양이 작렬하던 금호강가에도, 바늘로 찌르는듯한 겨울바람을 맞던 금호강 얼음판 위에도, 아귀가 맞지 않는 미닫이 문을 양손으로 짚고 어깨까지 동원해야 겨우 삐거덕 열고 들어가던 장미 만화방에도, 창으로 비스듬히 들이치는 오렌지색 오후 햇살에 반짝반짝 하얗게 떠다니는 먼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집 마루에도, 기억 속의 나는 늘 혼자 앉아있다.


오후 네 시? 다섯 시? 오십을 넘기고도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내 시계는 몇 시쯤일까.

근자에 마음이 공명했던 에세이집 저자들은 거의 60년대생이었고 책을 쓸 무렵 오십 대 중후반이었다.

에세이 책의 많은 부분이 어린 날과 젊은 날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친구, 부모, 스승, 동료가 등장한다. 책을 가득 메운 것은 공간도, 시대도 아니다. 사람이다. 시절을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이 책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늦은 오후 같은 오십 대 그런 나이지 싶다. 나도 종종 고개를 돌려 내 어린 날멀거니 바라본다.  

유년기와 소년기는 사람의 토대이고 기반이다.

인생이란, 그 토대 위에 경험는 것이니, 기반이 튼튼해야 노년에 접어들어도 또 새로운 서사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 살의 내가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금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이제 알았다. 나는 나를 다시 만나려 살고 있다는 걸. P. 16

-<금호동의 달 / 김정식 저>-


혼자였다고 기억하는 내 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을 그이들을 찾아야겠다. 

거친 시절을 통과하면서 짙게 밴 나의 자기 연민이 방어적이고 작위적인 서사를 만들기 위해 밀어내고 지웠을지 모를 그 사람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야겠다. 


텅 빈 마루에서 지금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어린 내가 더 이상 혼자 쪼그리고 앉아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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