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대책회의 창업기
토요일 오후 2시, 현수막 걸었다고 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주말에는 김광석길에 사람이 많다. 한 명이라도 더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금요일 게시를 부탁했는데, 토요일 오후에 걸렸다.
바빴겠지.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일요일보다는 토요일이 낫지 않겠나.
수고했다, 고맙다, 답톡을 보냈다. 간판 업체 대표는 고등학교 동기다.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때는 가까운 축에 속한 친구다. 악대부에서 나발 불던 친구가 간판 베테랑이 됐다. 사람 일 참 모른다.
월요일 아침 운동 중에 돌출 간판 위치를 묻는 톡을 받았다. 오늘 다냐 물으며 사진에 표시를 해서 보냈지만 가서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작업한다니 뭐라도 거들 게 있겠지, 마음도 있었다. 얼른 샤워를 하고 차를 몰고 가니 유리창과 문에 시트 글씨 부착하려고 앞 세입자가 붙여 놓은 글자를 제거하고 있었다. 한 군데씩 붙일 때마다 높이와 좌우 간격을 묻는다. 오길 잘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만은, 그래도 주문자의 의견을 반영해야 뒷말이 없다. 특히 친구끼리는 작업 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말을 못 해 속 상하는 일도 있으니까. 그리고 손톱만 한 디테일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법이니까.
출입구 시트지는 여자 손님 키높이를 고려해서 친구가 잡고 있는 위치보다 조금 낮은 높이를 가리켰다. 3층 큰 창 두 개, 가게 출입구, 그리고 1층 주출입구까지 작업은 빠르게 끝났다. 20대에 일을 시작해서 얼추 삼십 년 업력이라더니 과연 손이 빠르다. 돌출 간판도 불과 이삼십 분만에 제까닥 달았다. 시트지 쪼가리 줍고, 크레인에 간판 실을 때 거든 것 말고 내가 한 건 없다. 괜히 팔짱 끼고 멀리서 쳐다 보고, 작업하는 데 얼쩡 거린 게 다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다.
일을 마치고 열한 시쯤 이른 점심을 먹었다. 나는 된장찌개, 친구는 청국장. 반찬이 실한 집이다. 인당 9천 원에 가자미조림에 두부구이까지 딸려 나온다. 요즘 물가치곤 괜찮은 상차림이다. 높은 데서 찬바람 맞으며 고생한 친구가 서운할까, 염려는 덜었다. 고등학교 때 추억 몇 개 나누며 밥을 먹고, 작업 비용 송금 계좌 번호는 카톡으로 받기로 했다. 현장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건물을 바라보고 섰다가 사진을 찍었다. 뭔지 잘 모르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뭘까. 무슨 기분일까.
차에 앉아 생각했다. 글로 기록하려면 이 묘한 기분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나쁜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좋은가? 그렇다. 아니,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다.
얼마나? 뛰어다니거나 날아다닐 정도는 아니다. 아무튼, 나쁜 쪽이 아닌 건 확실하다.
뿌듯한가? 글쎄다. 이걸 뿌듯이라고 해야 하나. 정황상으론 뿌듯하다 해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대놓고 막 뿌듯한 기분이라긴 애매하다.
그럼.
뭘까.
예닐곱 살 때, 부산에서 대구로 이사 왔다. 봉덕동 7번 버스 종점 앞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대문에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굵은 궁서체로 새겨진 세 글자는 분명 아버지 이름이었을 게다. 내가 그때 한글을 깨쳤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큼직하고 당당한 문패는 기억한다. 아파트가 보급되기 전까지 내 집 마련은 당연히 주택을 사는 것이었다. 소위 집쟁이 집이라고 불리던, 개인 건축 업자들이 빵틀로 찍어내듯 똑같은 모양으로 지은 작은 집. 집을 산 주인은 소유권을 과시하듯 호주의 이름을 새긴 문패를 대문 기둥에 떡하니 달았다. 덜 가진 자들은 남의 이름이 새겨진 집의 방 한 칸 혹은 두 칸을 빌려 살았다.
대책회의 간판을 보며 문패를 생각했다. 비록 임대 매장이지만, 내 문패를 단 것 같았다. 문패를 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책회의'는 온라인 기반 독서 모임이다. 독서 토론은 커피숍 같은 데서 모여서 하지만, 기본적인 활동은 온라인 위주다. 내가 독서 토론 공지를 써서 올리면 글자와 사진으로 이뤄진 정보는 0과 1로 분해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가 각 회원의 휴대폰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 글과 사진 형태로 조립된다. 뭐라도 포스팅할 때마다 독서 모임 '대책회의'는 '현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구름이나 안개처럼, 여차하면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간판을 다는 건, '현상'을 '사건'으로 바꾸는 행위 같다.
어쩌면 막연하게 말과 생각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내 꿈이, 쓰다듬고 어루만질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갖추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만 있던 꿈 한 조각을 물리적인 실체로 바꿔 거기에 대책회의라는 내 문패를 단 것 같은 느낌이다.
책임감이었다.
무겁지도 짓누르지도 않는 책임감.
예쁜 내 새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키우고 싶은 그런 종류의 책임감.
그렇다면 묘한 그 기분을 뿌듯이라고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