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人

북카페 대책회의 창업기

by 수필버거

새벽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걱정이 뭉쳐 생긴 불안은 낮동안 물 잔 속 흙처럼 가라앉았다가 문득 눈 뜬 캄캄한 새벽에 흙탕물이 되어 잔을 뿌옇게 흐린다. 낮의 이성으로 그린 밝고 긍정적인 미래 같은 건 해뜨기 직전의 짙은 어둠 속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평생 쌓은 경험이 낯선 환경에서 큰 쓸모가 없을 거라고 느낄 때, 내가 능숙하게 해 낼 일이 별로 없다고 느낄 때, 본능적인 두려움과 불안이 머리와 가슴을 채운다. 세수하고 옷 챙겨 입고 차를 몰아 단골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받아 들고 가게 밖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울 즈음, 탁한 흙탕물은 겨우 진정된다. 그제야 희망과 설렘이 여명처럼 조금씩 마음을 밝힌다. 다시 계획과 실행, 이성의 동이 튼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용기와 겁이 교대로 머리를 드는 법이다. 특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무거운 예감이 부지불식 간에 들면, 어둠과 밝음의 교차 빈도는 잦아진다. 북카페 대책회의는 내가 오래 준비한 일이다. 이제 실전 말고는 더 읽을 책도, 더 찾을 장소도 별로 없다. 더 읽고 더 가볼 수 있겠으나, 불안을 덮기 위한 회피성 분주(奔走) 일뿐이다.


요 몇 해 사이 내가 한 일 중에서, 제일 잘했다를 넘어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고 까지 생각하는 일 두 가지가 있다. 브런치 글쓰기와 독서 모임 대책회의를 시작한 것.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브런치 작가 도전을 마음먹었던 당시의 내가 새삼 고맙다. 요즘 쓰는 글이 첫 글보다 많이 낫냐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순 없지만, 처음에 비해 쓰는 마음만큼은 많이 편해졌다. 무슨 글이라도 쓰라면, 써야 한다면, 아무 데나 앉아 시작할 수는 있다. 글쓰기가 숭배의 대상에서 동네 친한 형 정도의 지위로 내려왔다. 아직 배울 것 많고 재능 회의(懷疑)도 여전하지만, 무슨 글이라도 그리 흉하지 않게 쓸 수 있게 됐다. 매일 뭐라도 써서 올려야 하는 모임 운영자 입장에서 글쓰기 몇 년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오래 연재하게 될 브런치 매거진 '나는 대책이 있다'를 쓰겠다는 결심도, 그때의 '시작'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책회의 독서 모임이 있다. 멀고 높아 아름답게만 보이는 에베레스트 산정상에 오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황당한 노후 대책을 세우고서, 커뮤니티부터 만든답시고 시작한 대책회의다. 오늘자로 네이버 밴드 189명, 네이버 카페 54명이 됐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 근 3년이 걸렸다. 북카페 임대차 계약을 했다고 알리자 몇몇이 물었다. 얼마나 많은 회원이 손님으로 올 것 같냐고. 나는 큰 기대 없다고 답했다. 내 답이 냉랭하게 들렸을 수 있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조금 순화하자면, 기대치가 낮다는 말이다. 회원 누구라도 찾아주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몇 명이 오고 몇 퍼센트가 올 것인지 계산하지 않는다. 한다고 맞지도 않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기대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모임은 뭐 하러 만들었냐 물을지 모른다.

글쎄 말이다. 모임은 대체 엇다 쓰려고 만들었누.

임대차 계약 후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합판 가벽을 뜯어 내고, 서가(書架) 형태와 가구 위치 도면을 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동안, 점점 새벽의 무의식이 밀어 올리는 불안과 대면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럴 때면 '마호목공방' 동생 상헌이와 북카페 회의(?)를 했다. 의자 높이, 테이블 크기, 배치, 냉장고 숫자와 위치, 가오픈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따져봐야 할 사항은 늘었다. 이랬다 저랬다, 줄었다 늘었다, 커졌다 작아졌다, 매일 바뀌는 의견. 진지하게 시작했다가 농담으로 끝나기 일쑤지만, 책방에 대한 고지식한 클리셰 같은 생각을 치우고, 책으로 꽉 채워야 한다고 믿었던 공간은 좁을수록 여백을 두는 것이 낫다고 깨닫기도 하면서, 머릿속 대책회의 북카페 그림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굳이, 나는 지금 잘하고 있냐고 묻는 듯, 답하듯, 말하지 않아도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나란히 서서 함께 보며 고민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고맙다. 상헌이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서점, 책방, 모임 아지트란 단어로 표현되는 꿈을 나눈 사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3환이가 있다. 열 살 혹은 더 이상 나이차가 나는 동생들, 동환, 윤환, 지환의 도움이 있다. 철거와 폐기를 돕고, 제 쉬는 날 뭐 할 거 없냐 전화하고, 우렁각시처럼 텅 빈 매장에 아끼는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가고, 원목 자재를 3층까지 들어 올리는 일을 돕고, 커피 사들고 응원 오고, 무시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나눠주는 이 친구들이 내 불안의 진정제다. 상헌이와 쓰리환뿐이 아니다. 카톡으로, 대화창으로, 가끔은 전화로, '잘 돼 가냐', '뭐라도 도울 일 없냐', 관심 갖고 물어주는 회원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한자 사람 인(人) 자는 사람 둘이 기댄다는 의미가 있단다. 다리 벌린 사람 형상을 본땄다는 해석이 더 유력하다지만, 나는 두 사람이 기대는 해석이 좋다.

씨를 뿌리고 함께 가꾼 작은 커뮤니티 '우리' 대책회의가, 대책회의를 이루는 사람들이, 내가 기대는 언덕이다.


북카페 오픈 준비와 내 회사 일을 병행하는 요즘, 피곤에 절어 살고 있다.

베개에 머리 대면 금방 곯아떨어지지만, 그 짧은 동안 뿌듯함으로, 흐뭇함으로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혼자였다면, 시작할 엄두를 냈을까.

혼자였다면,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을까.

혼자였다면...

혼자였다면...


그때, 만들길 참 잘했다.

기댈 수 있는,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깨닫는다.

우리 대책회의는 제 역할을 이미 차고도 넘치게 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