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다.
한 편의 긴 꿈.
어찌 살았누.
2025년 11월과 12월, 두 달을 돌이키면 드는 감상이다.
10월에 김광석길 건물 3층 임대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시월 납품과 마감을 한 게 11월 초.
전 임차인이 가게를 비우는 날짜는 11월 28일이다.
한 달 시간이 있어 보이지만, 11월도 일을 해야 하니 월말이 되면 바쁠 게 분명하다.
월초에 이사를 해야만 옮긴 장소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이사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평소 마감 후 며칠은 여유롭게 지냈지만, 이번 11월은 쉴 틈이 없다.
일주일 예정으로 시작한 공장 정리와 이전은 앞 글 '천천한 작별'에 쓴 바와 같이 보름이 걸렸다.
하이라이트는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5톤짜리 재단기를 고철로 파는 날.
그것도 대구 업체는 다 거절을 해서, 대전 소재 고철 취급 업체에 넘기기로 했다.
고철 단가를 계산하고 거기서 운반비용을 차감하는 조건.
푼돈 받았다.
업체에서 기계 무게만 생각하고 너무 큰 지게차를 불렀다.
공장은 두 구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5톤짜리 지게차는 너무 커서 가운데 통로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형 지게차 비용은 그대로 지불하기로 하고 작은 지게차를 새로 불러서 공장문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기계 무게를 버거워하는 지게차가 꺼떡꺼떡 공장을 빠져나갔다.
나가도 문제.
공장 주차장은 경사가 있다.
트럭을 가까이 대고 싣겠다는 계획은 무산됐다.
바닥 기울기를 간과했다.
주차장에서 큰 차를 빼서 도로를 막는 민폐를 무릅쓰고 평지에 다시 세웠다.
상차 완료까지 반나절 더 걸렸다.
기계가 너무 무거워 차가 기운단다.
운전할 때 사고 위험이 있다고 기사가 투덜댔다.
적재 공간 한중간에 놔야 트럭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단다.
밀고 당기는 미세 조정을 오래 한 끝에 차가 출발했다.
이걸로 큰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당장 쓸 원부자재는 이전을 마쳤지만, 공장을 깨끗이 비워주기 위한 정리가 난관일 거란 생각은 못했다.
묵은 짐 정리에 들인 시간은 예상을 훌쩍 넘어버렸다.
그냥 확 버렸으면 빨랐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간다는 애잔한 감상이 원인이었다.
하나하나 살펴 분류하고, 문득 쓰린 추억 떠오르면 담배 한 대 피우고 버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몸은 고달팠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방식으로 처분하길 잘했다.
내 삶의 흔적, 내 고민의 증거, 내 시도의 잔재들이니까.
'나'에 대해, 내 지난날에 대한 존중이랄까.
그 결과에 상관없이.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안지 않으면 누가 안아줄까 싶어서.
애증 서린 느린 작별.
11월 21일에야 끝났다.
비질까지 마친 날.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이 흩어지지 않고 공간을 떠돌아 울리는 빈 공장에 한참 서 있었다.
망해서 쫓기듯 들어온 자리다.
그때의 마음.
아득하다.
다시 올 일이 있을까.
모를 일이다.
지날 일 있으면 이쪽으로 고개라도 돌리겠지.
쉴 틈 없이 11월 납품 일정을 소화했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지 않은 동선 따라 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고됐다.
예상 시간은 항상 초과.
옛 공장이었으면 한 시간 걸릴 작업이 새 공간에서는 두 시간이 걸렸다.
몸은 몸대로 고단하고.
잔금날인 11월 28일 아침, 믿고 기대는 '우리의 목수' 마호목공방 상헌이 오른손 뼈 골절과 깁스 소식을 들었다.
위로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도 위로를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아픈 사람이 더 힘들겠지만 책장, 책상 제작은 어떡하나.
또, 아득했다.
원청에는 이사때문에 입고가 늦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납품차를 보내니 12월 첫 주였다.
이제, 북카페 공사를 시작해야 12월 15일 오픈을 할 수 있다.
철거부터 하자.
전체는 아니고, 합판 가벽 두 군데만 뜯어내기로 했다.
나는 초짜라서 힘들고, 멀티커터 연장 사용법 가르쳐주며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깁스한 손으로 내 팔을 몇 번이나 잡던 상헌이도 긴장으로 힘들었을 게다.
온종일 걸려 겨우 벽 하나 뜯었다.
동환이가 형님, 뭐 하세요 하며 찾아온 날은 꼭 힘쓰는 날이다.
괜히 놀러 왔다가, 폐기물 잘게 자르고 재활용 업체에 실어다 주는 일에 동원됐다.
미안해서 족발에 소주 한 잔 샀다.
곯아 가던 내가 고기를 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벽 철거는 한 곳만 하기로 했다.
그게 보기 낫다는데 상헌이, 동환이, 나, 모두 광속으로 동의했다.
하나는 남겨 두는 게 디자인 측면에서 보기 낫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그럼 그럼, 그게 훨씬 낫네!
페인트는 겹칠을 했다.
마르는 데 하루 걸렸다.
이제 상헌이 목공방 장비를 옮겨야 했다.
작다고 무시했다가 큰코다쳤다.
무게가 장난 아니다.
주문한 원목을 3층으로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길이로 재단을 해서 받았는데, 한 개 길이가 3미터가 넘으니 꺾인 계단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윤환이가 당첨됐다.
1층에서 한 사람이 올리면 2층 창으로 다음 사람이 받아서 다시 3층 창에 선 사람에게 전달.
릴레이로 원목들을 올렸다.
상헌이가 비교적 가벼운 삼나무 원목을 선정해서 가능했다.
가구 작업 전에 원목에 오일 스테인을 발라야 한단다.
상헌이는 한 팔로 낑낑, 나는 뭐 하나 익숙지 않아서 낑낑, 쪼그려 앉은 자세로 오리걸음을 해가며 한 장 한 장 앞뒤로 돌려가며 오일을 먹였다.
냄새가 고약하다.
머리가 핑 돈다.
칠 작업을 하는 동안은 열 수 있는 모든 창을 활짝 열어두고 현장을 나와야 했다.
상헌이가 기겁한 일도 몇 번 있었던 테이블쏘 작업.
생각보다 쉬운데? 하다가 눈으로 쏘는 욕을 먹었다.
톱날 돌아가는 게 겁나긴 했다.
'우리의 동환이'는 또 노가다 하는 날 놀러 왔다.
이틀간 큰 책장을 같이 짰다.
첫날 만든 책장과 둘째 날 만든 책장은 내 눈으로 봐도 차이가 확연했다.
우리 눈엔 발전으로 보이지만, 앞으로의 손님 눈에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상헌이가 피스, 타카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가렸다.
공간이 넓지 않은 곳은 좁은 책장을 벽에 고정하기로 했다.
두 개의 벽에 좁고 긴 원목을 꺽쇠로 붙였다.
오픈 예정일인 15일이 코앞이었다.
책상도 못 만들었는데.
15일 오픈은 구호이자 자기 암시였다.
상헌이 깁스 통보를 받는 날 이미 예감했다.
그래도 15일, 15일 노래를 불렀다.
데드라인은 모든 창작의 원천이다.
날짜는 넘길지라도 진척은 있다.
슬로 슬로 퀵 퀵.
서적 도매상에 가입했다.
승인을 받아야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건 몰랐다.
돈만 있다고 책을 도매가에 사지 못하는구나.
연말연시라 그런가 이 글을 쓰는 1월 5일까지도 승인 대기라고 뜬다.
뭔 문제가 있나...
일단 진열 상태 점검을 위해 내 사무실에 있던 책을 진열해 봤다.
작년 여름 샵인샵 1호점과 2호점에서 봤던 모습이라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대책회의' 자체 책방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북카페를 여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의자부터 포크까지.
이브날 가오픈은 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뿐.
그게 무슨 오픈이냐고?
내 마음입니다!
대책회의 송년회를 12월 27일로 확정하고 공지를 올렸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 신청을 했다.
회비도 받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꽁지에 불이 붙었다.
당일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바빴다.
아침부터 허둥지둥,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결제 한 때가 이미 늦은 오후.
몇 분의 여자 회원의 헌신적인 준비와 조력이 없었다면 손가락 빨고 앉았을 뻔했다.
아무튼, 무탈하게 마쳤다.
준비해 온 책을 선물하는 시간과 시 낭송까지.
진행을 내가 했는데 뭔 소릴 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기억나지 않는 게 나을 만큼 엉망이었던가.
정식 오픈은 아직 못했다.
회원들이 오가다 들르는 게 유일한 손님이다.
메뉴도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태.
준비가 이리도 미흡하다.
어제, 예정 오픈 시간에 대책방에 가서 몇 가지 문서 작업을 했다.
(북카페, 책방, 가게 모두 이상하다고 우리끼리는 '대책방'이라고 부른다)
문득, 어두운 톤의 행복감이 들었다.
아니다.
어둡다기보다 밝지는 않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미래에 대한 옅은 불안을 깔고도, 어찌 예까지 왔나.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종류의 행복.
꿈같다.
지금도.
마냥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악몽도 꿈이다.
하지만,
중년 남자의 황당한, 어쩌면 허황한 꿈이 형체를 갖췄다.
신기하다.
*도와준 동생들, 응원해준 회워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글표지 사진은 공장냥이에서 카페냥이가 된 통이. 재단기 내는 날, 햇살 아래로 달아나 구경하던 모습을 찍었습니다. 깡통이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