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음복을 하며, 이번을 마지막으로 제사와 차례를 없앨까 물었다. 아내는 반색했고 아이들은 무심했다. 제법 비장하게 물었는데 시시하게 끝났다. 근 삼십 년을 이어오던 아버지 제사는 그날이 마지막이 됐다. 10년 전 일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거실 장식장에 놓여있는 아버지 사진을 보았다. 포마드를 발라 2:8 가르마를 타고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매로 넥타이에 베스트까지 받쳐 입은 쓰리피스 차림의 상반신 사진. 영정으로 썼던 사진 속 아버지는 무표정하고 근엄하다.
크게 야단맞은 적도 없는데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엄한 사람이다. 자주 보지 못해서, 말을 나눈 기억이 드물어서, 밥상머리 예절에 엄격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열넷 설 무렵 돌아가신 아버지는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 내가 가끔 아버지 생각을 하는 건 혈육의 아버지가 아니라, 상징으로서의 아버지다. 삶의 갈림길에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면 아버지 생각을 했다. 가진 정보가 빈약해 늘 혼잣말이었다. 결국 혼자 결정하고 혼자 헤매고 혼자 우회하고 혼자 후회했다. 삼십 년이면 족하다. 삼십 년이나 모셨다. 됐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버지를 모른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할아버지는, 그저 한 남자의 생을 흐릿하게 그린 역사책 속 통사처럼 윤곽만 있다. 그나마 귀담아 들었을까도 미심쩍다. 그런 할아버지의 제사는 별미 같은 제사 음식 먹는 날이었을 게다. 아내에겐 제수 장만에 고생하는 날, 돈 드는 날. 기억에도 없는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이 들기는 어렵다. 제사는 숙고하지 않고 따른 형식이었다.
지난 설에도 아내는 전 몇 가지를 부쳤다. 차례는 안 지내도 명절 기분은 내자고 손 덜 가는 동그랑땡, 동태전 정도는 한다. 나는 제사 나물을 좋아한다.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반찬과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참기름의 고소한 향과 담백한 맛과 식감을 좋아한다.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무, 콩나물, 재료 가짓수도 많고 손질도 각기 해야 하고, 데치고 삶고 볶는 복잡한 과정을 알기에 나물 해달라는 말은 못 한다. 유튜브를 보며 직접 해봤지만 기대한 그 맛은 못 낸다.
설 연휴에도 책방을 열었다. 9시에 문을 닫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커다란 밀폐 용기에 갖가지 나물이 담겨있었다. '어' 소리가 튀어나올 만큼 반가웠다. 밥과 전 몇 개, 나물을 쟁반에 담아 소파에 앉았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나물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 아사삭 씹었다. 티브이를 보던 눈이 장식장으로 옮겨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쟁반을 옆으로 밀어놓고 노트북을 켰다. 하얀 브런치 글쓰기 화면 상단 제목 칸에 '기억'이라고 썼다. 나물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