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용기 내는 한 달
어제, 책방 뒷골목 흡연구역에 내려가 전담을 꺼내는데, 카톡 알림이 왔다. 달랑 1명의 글용달 1기 참여자가 보낸 '4-2' 제목의 워드 파일이었다. 새끼손톱만 한 노란 꽃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봄동 사진을 찍고, 환한 봄볕 아래 쪼그려 앉았다. 다운받으며 이 친구가 사무실에서 상사 눈치 보며 폰으로 글 쓰는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글용달(글 쓰는 용기 내는 한 달)은 워크숍에 가깝다. 내 능력이 남을 가르칠 만큼은 못되기에, 먼저 쓰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막히면 뚫는 방법을 찾고, 펜을 놓으면 다시 쥐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4주 동안 왜 글이 쓰고 싶은지부터 장차 브랜드가 될 자신의 필명을 짓는 과정과 글쓰기 아지트를 만드는 내용까지 3개의 글제를 낸다. 작년 1월과 2월 대책회의 글쓰기 소모임도 같은 주제를 포함한 7개의 글제로 했고, 다수의 참여자가 재밌어했었다. 그 두 달간 12명이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 쓰는 사람으로 산다.
제미나이를 켰다. 고객에게 보험의 보장설명을 하기 위해 직접 글을 작성하는 것보단 AI에게 부탁하는 것이 시간을 줄여줘서 ‘카톡안내문구 작성해 줘’ 창에 적었다. 나는 글쓰기에 두려움이 매우 크다. 평소에도 지점장님은 육하원칙에 맞게 말을 하고, 되묻지 않게 질문을 잘해보라고 하셨다. 나에게 글쓰기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나와의 거리가 먼 의학, 과학, 음식, 전문분야의 고유의 영역이고 작가들만 쓰는 것이었다.
-왜 쓰는가-
(본인 동의 하에 인용)
그녀가 쓴 첫 주 글제 '왜 쓰는가'를 읽고, 독자로서의 느낌은 보고서를 읽는 것 같다고 했다.
시간순, 행동순. 나열이었다.
4주간 내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다. 설명 말고 보여 주라. 에세이도 소설도 결국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서다.
다운받은 글은 구글 독스로 떴다. 제법 따가운 봄햇살에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그늘로 피하지도 못한 채 읽어 내려갔다. 점점 미간이 좁혀지며 들숨과 날숨이 의식될 만큼 커졌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흑백이었던 일상에 색이 들어와서 알록달록 원래의 색을 찾아간다. 출근길, 퇴근길, 평소에 틈틈이 ‘지금 상황을 글로 묘사하면 어떻게 적을까?’ 머릿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평소에 글로 써보고 싶은 순간을 적어보라고 했을 때, 출근길 터널을 지날 때 상황이 떠올랐다. 어두운 터널 안 흰색 실선들, 엉덩이에 빨간 불을 켜고 빨려 들어가듯 앞으로 나가는 차들.. 가이드님이 글쓰기는 치매 예방에 좋다고 종종 이야기하시는데, 그게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글용달’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와 동행한 바람과 예쁜 벚꽃나무를 보고, 설명 말고 어떻게 보이듯이 묘사할지 머릿속에 생각했다. 집에 가서 글로 적어보니 신기하게도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까만 밤하늘과 대비되어 하얗고 눈부신 벚꽃나무 모습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밋밋하고 반복되던 일상을 글로 표현하니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추억거리가 풍성해진 기분이다.
-4-2-
(본인 동의 하에 인용)
1999년 영화 '플레전트빌'은 데이빗(토비 맥과이어 분)과 제니퍼(리즈 위더스푼 분), 주인공 남매가 TV 시트콤 '플레전트빌'로 빨려 들어가는 내용이다. 흑백 마을을 배경으로 흑백 모습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제니퍼의 좌충우돌 덕에 사랑, 미움, 분노, 자유 같은 감정과 욕망을 깨닫고 하나 둘 칼라로 변해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매일이 비슷해요.
첫 세션에서 하루 중 글로 쓸 만한 일이 있냐는 물음에 그녀가 한 답이었다. 감정을 관찰하란 말에는 그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4-2 글은 여섯 번 고쳐 썼다고 웃으며 말하던 그녀의 일상이 칼라가 됐다.
늘어선 빨간 후미등에 짜증이 났을지도 모를 매일의 출근길 정체는 이제 한 줄 글이 됐다.
너무 오래 쪼그려 앉았던 탓에 일어설 때 무릎은 뚜둑, 입으로는 끙 신음 소리를 내는데,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