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브런치
하얀 바탕.
화려한 사진이 큼직 큼직 배치된 그리드 레이아웃.
아름다웠다.
클릭했다.
흰 배경에 가지런히 찍힌 진회색 글자.
이른 아침 눈 덮인 시골 마당의 까치 발자국 같다.
넋 놓고 한참 쳐다보았다.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작가 신청 시스템은 욕망 트리거였다. 달떴다.
갑자기, 나는 오래전부터 작가를 꿈꿔온 사람이 돼 있었다.
햇살이 비스듬히 들이치는 침침한 마루 구석에 앉아 책을 읽으며 소설을 쓰고 싶어 하던 어린 내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아이를 스치고 간 꿈이 마치 간절했던 것인 양.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곧 포기하게 될, 출간이란 거창한 꿈을 품은 채.
한 달 전 공동 매거진 참여 제안을 받았다.
덥석 받고서야 내가 민폐일 수 있음을 깨달았지만, 때 늦은척, 모르는 척, 단톡방 발치에 쪼그려 앉았다.
3월 3일, 매거진 "봄에는 꽃씨를 뿌려야만 해 ( https://brunch.co.kr/magazine/seed-withus )" 13개 글제 중 첫 글을 발행했다. 공동 연재 마치고 가을이 오면 부크크 책으로 출간한단다.
내가 여기에 왜 끼었을까 민망한 궁금증과 공저 출간에 대한 부푼 기대가 포개졌다.
모로 꼬고 있던 고개를 누군가가 양손으로 잡아 돌렸다.
봄 매거진 두 번째 글을 쓸 무렵, 단톡방에서 가을 매거진이 책으로 묶인 사진을 보았다.
공저자들과 에디터의 땀방울이 책에 맺힌 듯했고 그 또한 아름다웠다.
입을 벌린 채 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침을 삼켰다.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도 계획은 있었다.
해가 바뀌기 전까지는.
책방은 벚꽃이 필 때까지 견디는 기간으로 정했다. 북카페 적자는 제조 매출로 메우면서 자리 잡을 시간을 벌 계획이었다. 썩어도 준치, 그래도 겨울은 업계 성수기다. 계획을 손에 꽉 움켜쥐었다.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누구나 한 대 맞기 전까지는 계획이 있다.”
-마이크 타이슨
1월부터 3월까지 발주서의 숫자가 핵주먹이었다.
계획은 피 묻은 마우스피스처럼 튕겨 날아갔다.
까만 퀼 펜 로고가 마음 지하실에 묻혔던 꿈 하나를 햇살 가득한 마당으로 끄집어냈다.
예상치 못한 공동 집필 프로젝트 참여, 진작에 접었던 출간의 꿈도 아른대는 지금.
마음 따라 흘러온 나의 글쓰기.
업계의 낡은 시스템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문구는 살겠지만, 문방구는 죽고 있다.
구조적 붕괴다.
봄 매거진 세 번째 글까지 쓰고 올리는 동안 글용달 1기 3주 차 세션을 마쳤다. 어제 발행한 '나는 대책이 있다 시즌 2'에 글용달 출시 이야기를 썼다. 참여 문의 댓글이 달렸다. 답댓글을 쓰는데 자판 사이를 오가는 양 엄지가 부딪히고 버벅거렸다. 뭔가 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후엔 단체석 예약 전화를 받았다. 달랑 팔로워 270명 계정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봤다고 했다. 3월 3일 게시물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독서 모임 두 개가 있었다. 뒤풀이도 책방에서 했다.
봄까지는 견디는 구간이란 예상은 맞았다.
지탱할 수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틀어졌다.
책방 창으로 보이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봄이다.
꼭 쥐고 있던 지도를 거칠게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머리카락이 나풀거린다.
덧,
글 마무리지으며 브런치가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읽어주고 응원해 준 작가님들은 더 고맙다.
덕분에 지금까지 쓰고 있다.
브런치 작가님들을 초대하려 한다.
차 한 잔 대접하며 글 이야기, 책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우리 책방 커피는 싸다.
아무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와서 드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