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빌려 입었던 상복 정장이 자주 떠올랐다. 공장 일을 마치고 점심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목이 조여왔다. 일층 유리문을 열고 첫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감옥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여기는 내 사무실이다, 속엣말도 큰 소용이 없다. 3층 책방 문을 열고 루틴대로 움직이는 동안은 괜찮다. 자리 잡고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켜면서부터 연한 긴장이 올라와 문 닫을 때까지 이어졌다.
손님 맞는 태도도 어색했다. 불편한데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엉거주춤한 느낌. 빌려 입은 상복 상의는 어깨선은 맞는데 품이 컸고 총장은 짧아 사람이 어벙해 보였다. 고작 며칠이면 끝나니까 참자 했었다.
책방은 그게 아닌데. 나의 오늘이고 내일인데, 남의 옷 빌려 입은 듯한 이 느낌은 언제 사라지려나.
2월 중순이 됐다. 어느새 오픈하고 한 달이 흘렀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불편과 긴장은 천천히 목을 조르는 것과 같았다. 짧은 겨울 해가 뉘엿해질 무렵이면, 미열로 발그스레한 얼굴로 연신 시계만 봤다.
여기는 사무실이기도 하지만, 내 작업실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썼다. 작정하면, 하루에 두 개씩 써도 모자랐다. 인스타부터 밴드까지 관리 채널이 다섯이다. 사진 찍는 재주가 없으니 그나마 사진보단 나은 글로 소통을 해야 하는데, 성격 다른 글을 여러 군데 써 올리는 일은 만만찮았다.
어느 날은 글 두 개 쓰고 녹초가 돼 퇴근을 했고 어떤 날은 프로그램 기획안 짜다가 부랴부랴 책방 문을 닫았다. 머리로 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지 퇴근쯤이면 늘 허기가 졌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갔다. 생산성이 높아진듯한 뿌듯함도 간간이 맛보는 새 3월이 목전이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던져야 할 때였다.
ai와 회의를 거듭하고 글용달이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포문을 열기로 했다. '글 쓰는 용기 내는 한 달'의 약자로 4주 과정이다. 대책회의 밴드에서 세 번에 걸쳐 두 달씩 총 여섯 달 동안 글쓰기 소모임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가르치지는 않았다. 가르칠 재주도 없다. 2019년 브런치에 입성하여 지금껏 글을 써온 경험을 밑천 삼았다. 출간 작가 타이틀도 없다. 화려한 문체를 가지지 못했고 엄청난 재능을 갖지 못했어도 오래 읽고 오래 쓰니 못난 글은 알아본다.
엄홍길 대장 보다 매주 앞산을 오르는 동네 형이 등산 초보자를 더 잘 이끌 수도 있다.
'여기서 쉬면 나중에 더 지쳐, 오르막은 곧 끝나, 포기하고 싶은 지금부터 오분만 더 오르면 금방 정상이야', 같은 조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3월 7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90분 세션, 8명 정원, 회당 2만 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게 맞나, 내가 자격이 있나, 회피성 고민을 거듭하느라 3월 4일 오후에야 겨우 인스타와 밴드에 공지를 올렸다.
알레아 이악타 에스트 (A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청자 1명.
네이버 폼을 확인하는 0.1초에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치밀었다. 얼굴 땀구멍이 열리는 따끔한 느낌과 투둑 엇박자를 내는 심장 소리. 몸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실망과 안도가 한 덩어리다. 1명으로 마감할 것 같은 예감에 실망, 그래도 첫 프로그램 개시는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가 시차 없이 덮쳤다.
3월 5일 목요일 아침 동네 편의점 앞 보라색 플라스틱 테이블 앞에 선 채였다.
무슨 말로 시작했는지 기억이 없다. 버벅거리거나 더듬진 않았던 것 같다. 펼쳐 놓은 노트북 오른쪽 아래 시계를 얼핏 보았을 때는 세션 시작하고 오십 분이 지나 있었다. 조금씩 긴장이 풀려 농담을 섞어 말하고 있었다. 참여자도 나도 꽤 웃었다. 두 시반을 넘겨 마쳤지 싶다. 신청자는 서가에서 강원국의 글쓰기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메모지와 가죽 다이어리 작은 것까지 구입하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1층으로 터덜터덜 내려갔다.
책방 건물뒤 작은 화단 벤치에 앉았다.
백 투더 퓨쳐 2편에서 미래로 간 주인공 마티가 입었던 자동 맞춤 재킷이 떠올랐다. 빌려 입은 상복이 마티의 재킷처럼 순식간에 수축되고 늘어나며 몸에 맞춰지는 장면이 스쳤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깍지 낀 두 손을 하늘로 쭉 뻗어 올리고 치 떨듯 어깨를 털었다.
통유리 출입문을 활짝 열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옷은 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