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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O May 14. 2020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엄마의 고추장아찌

배보다 배꼽이 큰 엄마의 염려 한가득

 그땐 한일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겨울연가”로 ‘욘사마’와 ‘지우히매’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 물론 한국에게 호감을 보이는 일본이 예뻐(?)보인 덕에 일본은 한국인의 해외여행 1위 국가가 되었고, 어느 순간 한국에 일본어로 된 간판과 술집이 즐비하게 된 것은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음에도 - 일본 유학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낮에는 공부하고,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았던 2004년이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해서 보내주신 유학이 아니었다. 없는 형편에 조르고 졸라 1년만 다녀오겠다 약속하고 빚을 내어 간 일본이었다.


 빛 좋은 개살구


주변 친구들은 일본으로 유학도 가고 좋겠다, 부럽다, 대단하다 소리를 해댔지만, 나는 기숙사비를 벌기 위해 시간을 쪼개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그야말로 “외국인 노동자” 의 삶을 살고 있었다.


계란 2알, 낫또 1개, 숙주 1봉지.


그리고 빠지지 않는 김치.

(처음 일본에 가서 구한 아르바이트는 백화점에서 김치를 판매하는 일이었기에  김치는 끊기지 않고 사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본식 기무치는 한국의 김치의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이어트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매일 타고 다니던 자전거와 가장 저렴한 음식을 마트에서 사서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신기하게 고기가 아니라 엄마가 담가주신 간장 고추장아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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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9남매 중 7번째 딸로 이북에서 피난을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셨다. 그래서 나에게는 외삼촌 1명과 7명의 이모가 존재한다. 9명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는 산에서 들에서 나물을 캐거나,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다가 장에 나가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와 이모들은 모르는 나물의 종류가 없고, 모르는 조개도 거의 없다. 친척 중 누구의 생일잔치라 하여 가보면 온갖 보지도 듣지도 못한 나물들 천지였다. 지겹게 먹었을 만한데 그래도 그 맛이 그리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왔다.

바로 이 타국에서.

1년 내내 묵혀두고 재워두고 먹고 먹고 또 먹어도 요술 할머니가 다시 채워놓는 것인지 줄어들지 않았던 고추장아찌. 냄새도 맡기 싫어했던 그 장아찌가 너무너무 그립고 먹고 싶었다.


“ 엄마, 나 그것 좀 보내줄 수 있어?”


일주일 뒤에 한국에서 소포가 왔다.

얼마나 꽁꽁 싸맸는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만큼 포장을 한참을 뜯은 후에야 장아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먹기도 전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고추 한 개라도 더 넣어서 보내주시려고 얼마나 눌러 담았는지 그 마음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혹여나 그 탓에 국물이 흘러넘칠까 싸고 싸고 또 싸서 보내신 것이다.


 “ 아니 무슨 고추장아찌를 이렇게 많이 보냈어~ 내가 이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고맙다고 잘 먹겠다는 말이면 될 것을 괜히 많이 보냈다고 투덜거려본다. 옆방 윗방 아랫방 사람들도 나눠주라고 많이 보내셨단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나물도 보내려다 쉴까 봐 못 보냈다고 아쉬움 가득한 뒷말도 함께.


엄마표 고추장아찌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니 가지런히 열을 맞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언제 만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신단다.


 엄마의 간장 고추장아찌는 직접 만든 간장에 푹 절인 것으로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짭조름해서 밥 한 숟가락에 장아찌 한입이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요즘에는 신선한 야채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잘 안 먹게 되었지만 피난을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엄마는 장아찌 요리의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덕분에 먼 타국에서 상하지 않고 오래오래 보관하며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는 고추장아찌를 받아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간장 고추장아찌는 고추가 그 간장 양념을 한껏 머금고 있다가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쭉~ 하고 그 양념장과 함께 고추의 알싸함이 함께 입안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씹을 때마다 짜고 달고 매운 다양한 맛이 살가운 식감과 함께 중독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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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의 지금.

지금은 또 고추 장아찌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엄마 집에 가게 되는 날에만 가끔씩 꺼내 먹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옆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다른 집에 김장철이 있다면 우리집에는 장아찌 철이 있다. 고추와 함께 마늘장아찌도 1년 365일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집간 두 딸도 이제 집에 없고, 아버지와 둘이 사시는 집에 일반 냉장고 1개, 김치냉장고 3개, 냉동고 2개가 언제나 늘 항시 가동 중에 있다.


 가끔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밑반찬으로 간장 고추 장아찌가 나올 때가 있다. 한입 먹어보면 역시나 엄마의 맛과 사뭇 다르다. 맛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의 고추장아찌에는 내 20대 초반의 유학생활의 열정과 그리움과 추억과 엄마의 사랑이 가득 들어가 있다. 그러니 어떤 명인이 와서 만들어 준다고 한들 그 맛이 나겠는가.


짭조름하고 쿰쿰하고 달달하고 매콤한 그 맛.


엄마의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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