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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Nov 30. 2020

모든 걸 다 두고 유학을 떠나도 괜찮을까?

라트비아로 떠난 초등학교 선생님

내가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해 가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던 질문이 있었다.

왜 유학이 가고 싶은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여기에 두고 과연 떠날 수 있을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늦가을쯤 혼자 스타벅스의 창가 자리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바쁘게 각자 갈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 사람들 사이가 아닐까. 나는 왜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할까.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커피로 몸을 강제로 깨워가며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몸이 쉬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고, 옆에 놓인 스마트폰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했다.


그때마다 나는 해외에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눈이 오는 겨울날, 카페에 앉아 공부하다가 가끔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넋 놓고 지켜보기도 하는 나.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목적을 잊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시도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2월 나는 내가 원했던 영어 점수를 받았고, 그다음 해에는 지원한 대학원에 합격해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 건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대는 겨울방학을 맞아 캘리포니아의 한 주립대와 연계한 어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4주간 캘리포니아에서 머물며 해당 대학교 안에서 영어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문화 체험 같은 거였다.


내 친구들이 다 관심 없어할 때 나는 무엇에 씐 듯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겨울방학 4주간을 캘리포니아에서 지내고 돌아왔다. 라스베이거스, 그랜드 캐니언, 샌프란시스코 등 많은 곳을 여행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지만 내 기억에 가장 남았던 것은 그 주립대학교의 캠퍼스였다.


우리 학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넓은 캠퍼스.

그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


그때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아, 나는 언젠가 꼭 유학을 가야겠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겠다."



그 생각을 실행시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눈을 감았다 뜨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나는 졸업을 하고 선생님이 되어있었고, 학생들과 지내랴 업무를 처리하랴 현실에 끌려다니다 보니 벌써 일한 지 3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끝나갈 때쯤 여동생과 걷다가 문뜩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나, 유학 가고 싶어."


우리는 언제나 쿵짝이 잘 맞았다. 그 말을 시작으로 어디로 떠나고 싶은지, 준비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지, 가서 무얼 하고 싶은지, 그냥 지나가는 이야깃거리처럼 재잘재잘 떠들며 우리는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부터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온갖 인사기록을 뒤져 유학휴직 가능 여부, 절차를 확인했고 온갖 나라 온갖 석사 학위 프로그램을 뒤지며 어디로 떠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영어 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어느 날 느닷없이 떠난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너무 깜짝 놀라실까 봐, 미리부터 지나는 말 반, 경고 반으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나 유학 갈 거야. 내가 다 준비해서 내년에는 꼭 해외에 있을 거야."


실은 그러고도 한 해를 더 지낸 후에야 나는 정말로 해외에 있을 수 있었다.



목표했던 영어 점수를 얻고, 미뤄왔던 라섹수술을 하고, 그리고 시리던 눈이 좀 괜찮아질 때쯤 희망하는 대학원에 지원했다.


다음 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고 적응할 때쯤, 지원했던 대학원 중 한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 통보를 받으면 그저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사실 이건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새 학교의 좋으신 선생님들, 병아리같이 착하고 귀여운 우리 반 아이들을 두고 과연 내가 떠나는 게 옳을까. 가족들, 친구들, 그간 쌓은 커리어,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다 여기에 있는데 다 내려놓고 내가 가서 공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결국 지금 유럽에 와 있다.

많은 생각과 주저함이 있었지만 결국 8년 전 내가 결심한 대로 유학을 왔다.


나는 유럽으로 와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냈으며,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이 없는 건 아니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니 아쉬운 생각도 많이 든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이룰 모든 것들이 내가 두고 온 것보다 더 크다고 나는 확신한다.


막연하게 꿈꾸었던 유학 휴직을 현실이 되게 만든 건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건 도전해보는 조금은 무모한 시도였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고민만 하고 가진 것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과감하게 시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그랬듯 무모한듯한 시도가 새로운 길을 찾아주고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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