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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5. 2020

누가 내 동생을 슬프게 하나

세상에서 제일 이쁜 내 동생을.

"환자가 나한테 침 뱉었다?

그 환자 보호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간호사들한테 소리를 질러."


동생이 오프를 받아 집에 오면 종종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준다. 처음 동생에게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병원으로 쫓아가서 다 뒤집어버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가 났었더랬다. 그러나 또, 동생 말을 마저 들으면 진정해보려 노력하게 된다.


내 동생은 대학병원 간호사다. 동생이 일하는 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장기 입원 환자들이고, 그리고 또 평생을 그렇게 장기입원환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 보니 정산되지 못한 병원비가 억 소리가 나고,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지치고 힘들어해서 작은 일에도 의료진과 마찰을 빚기 십상이랬다.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병원에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가슴속 한편에 사직서를 품은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느 사회인과 같이 하루하루 버티는 동생의 심정을 너무 잘 알아서, 나는 가만히 그저 듣고만 있었다.



"지금 내 동생 펑펑 울어.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그냥 하라고 그런대. 알려주지도 않고."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신입사원으로 갓 입사한 동생이 야근 끝에 퇴근해서 밤새 울고 있다고 했다. 전날에는 본사에서 내려온 직원에게 혼이 났댔다. 오늘은 작은 회사의 기존 직원들이 다들 나 몰라라 하며 미룬 일들과 씨름하고 와서는 그만두고 싶다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데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또 학교에 낸 취업계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 봐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가 동생의 취직 축하 케이크를 샀다고 자랑한 지 고작 3주 만의 일이다.


누가 내 동생을 슬프게 하나.

누가 우리의 동생들을 슬프게 하나.


고리짝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내게 힘이 돼주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동생을, 누가 감히 함부로 하는 걸까.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를 준 적이 없다.




'혼나면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실은 나는, 직장에서 '혼낸다'라는 단어를 쓰는 게 참 이질감이 든다. 조금 더 많이 알고 적게 알고나 일찍 들어왔고 늦게 들어왔고의 차이는 있겠으나, 같은 성인들이 모여 일하는 곳에서 누가 누굴 '혼낸다'니? 게다가 성인이 울정도로 혼낸다는 건 더욱 기가 막힌 일이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환자가 본인이 답답하고 마음대로 안된다고 의료인에게 침을 뱉는다거나 보호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상황이라니.  


신입사원은 일을 못한다. 당연하다. 못한다기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면 알려주고, 잘못된 것을 고쳐주면 된다. 그 과정에서 신입 사원은 자신의 실수에 속상할 수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눈물이 날 수도 있다. 그게 배워가는 거니까. 하지만 직장 상사에게, 고객에게, 혹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자괴감이 들고 눈물이 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길 가다 만난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럼 아마 두 번째 만남은 경찰서에서 하게 될 거다. 그런데 어쩌다가 만난 장소가 직장이라는 것 만으로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모욕하고, 침을 뱉는다는 게 용인되게 된 걸까. 논리적이지도 않고 효과도 없다. 다 큰 성인에게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면 잘한다고 누가 그랬나?


사람을 세워놓고 장황한 연설을 하며 군데군데 큰 소리를 내거나 인신공격도 조금 섞어주고, 인격적 모독감도 간간히 줘 본다. 그리고는 신입 사원에 눈에 눈물이 팽 도는 것 같으면 갑자기 미안한 마음에 어물쩡 덧붙였겠지.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나는 그런 대우를 받아서 잘되었다는 소리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당장 그들에게 잘되시라고 같은 소리를 하면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하실 것도 아니면서.


그들의 행동은 다분히 악랄하다. 그들은 신입사원이, 간호사가, 자신들보다 약자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약자들이 자신들의 언어적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임도 알고 있다. 위계질서가 어떻고 사내 분위기가 어떻고 혹은 직업윤리를 앞세워가며 상대적 약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남에게 던진 모진 말, 무례한 행동은 돌고 돌아 언젠가 그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왜 그들은 한 치 앞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내 인생은 모두 학교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나는 '회사'라는 집단에 대해 조금은 무지할지도 모른다. 내가 겪어온, 들어온 사회와 남들이 겪는 사회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이유는,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모두 서로를 존중한다고 가르쳤고, 그 아이들이 그런 사회를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며, 내가 사랑하는 내 동생과 모든 이들이 배우고 발전하는 삶을 살길 바라기 때문이다.


동생들의 한탄을 들으며 나는, 이 사회가 보다 남을 배려하는,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수많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네가 못하는 것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토닥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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