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헨님 Sep 29. 2019

후회하지 않으려고 떠올리는 것들

어떤 내일이 기다린다고 해도 말이야,

내가 자주 하는 이상한 생각 중의 하나는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아, 이다.


얕게 고민하여 발견한 이유는 이런 것이다.

1.갖고 싶은 건 대부분 욕망을 묵히지 않고 산다,

2.매일 매일 생일처럼 차려입는다,

3.세상의 끝까지 사랑할 사람을 발견했다,

4.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무척 귀하게 아낀다.

내가 종종 하는 이상한 말 중의 하나는 

엄마가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이다.


엄마랑 나는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그건 오래오래 병원에 그저 누워있던 나의 할아버지 때문이기도 하고, 대대로 단명한다는 외가의 내력, 그 안에 기억된 숫자들에 엄마가 가까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엄마는 건강하고, 활기차며 때로 탄성을 부를 정도로 아름답다. 스마트 기기를 잘 조작하며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내 꼭 찾아보라고 강요도 한다. 한때는 잘생긴 20대 게이 유튜버에게 빠졌다가, 현재의 최애는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모 아저씨다.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엄마는 끝내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깎아 내고, 나는 ‘과일이 몸에 좋다고 누가 그래? 이거 그냥 설탕 덩어리라니까!’하면서, 접시를 다 비운다. 그런 때에, 우리는 꼭 그런 얘기를 한다.


Mom “너무 오래 살지 않겠어.”
Daughter “맞아, 건강할 수 있을 때까지 살다가 가. 오래오래 병원에 누워 있는 거 서로 힘든 일이야.”
M “딱 20년 더 살면 좋겠어. 그전에 여행 한 번 같이 가는 건 어때?”
D “난 이제 같이 안 갈래. 돈 줄게, 아빠랑 가.”
M “아빠랑 가면 재미가 없는데, 같이 가주면 안 돼?”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머물렀던 패서디나의 예쁜 가정집과 소담하게 차려졌던 아침 식사와 렌터카를 타고 아웃렛에 갔던 것, 라스베이거스의 사막길을 반나절 내내 지나던 것을 이야기한다. 그때 참 좋았어, 고마워. 그런 얘기를 맥락 없이 내가 일하는 시간에 카톡으로 보내오기도 한다.


2주간 같이 지낸 미국에서 나는 낮 시간 내내 오래오래 잠을 잤다. 그러다 해가 지면 일어나 차를 몰고 밤거리를 운전해 돌아보다가 돌아오곤 했다. 엄마는 하나라도 더 보고 싶었을 텐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휴가를 온 직장인이고, 피로를 떨치고 뭐라도 하나 더 보려는 욕심이 없다. 그래서 게으르게, 게으르게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이번 추석 때, 먼 곳에 여행을 가 있는데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잘 커줘서 고맙다’


고모들이 나를 그렇게 칭찬하더라고, 자기가 생각해도 참 잘 자랐다 싶다는 것이다. 엄마한테 기쁨을 주려고 했던 시절들이 다행히 정확히 가 닿기는 했다. 공부 잘하는 딸, 좋은 회사에 척척 들어간 딸, 함께 몇 번이고 여행을 다닌 딸이었기 때문에. 모녀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다른 아줌마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고 자주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딸들은 얼마나 지 엄마를 구박하는데, 얼마나 무시하는데, 귀찮다고 같이 다니지도 않는데 여행이라니 참 복 받았지, 했다.

엄마랑 만나면 대부분 하루를 내 옷을 사러 다니는 데 쓴다.

“또 내 눈에 익숙한 옷을 입고 왔네!” 하면서, 내가 초라하게 하고 다니는 걸 견딜 수가 없다면서.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한다. 그럼 또 그걸 못 이기고 쉬고 싶은 주말을 포기하고 함께 나서고 만다. 자주 가는 숍들에서, 나는 엄마가 골라주는 옷들을 몇 번이나 탈의실을 오가며 입어 본다. 샵의 매니저들은 뜬금없이 그런 나를 너무 착하다며 칭찬한다. 새 옷을 입고 서서 당장 벗어, 라든지 이건 꼭 사야겠네, 하는 결정을 그저 기다리다가 커다랗게 쌓인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말은 점점 더 소중해지고, 정말 계절을 바꾸기 위해서만 엄마의 집에 간다.



엄마의 집은,

그건 사실 나와 내 형제와 아빠의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엄마가 시간을 들여 가꾸고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내가 버린 구형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고, 길 건너 건너 꽃집에서 계절마다 화분을 사다 나르는 곳, 나의 다른 계절 옷들이 차곡히 보관되는 곳, 거실 넓은 창 밖으로 매일 엄마가 홀로 보기 아깝다는 풍경을 감탄하는 곳. 거기엔 잘 정돈된 나의 침대와 진정한 환대와 새로 늘린 자랑할 만한 소품이나 연하게 내린 향 좋은 커피,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짜고 달게 조리고 끓인 음식들이 있을 것을 안다. 그러면서 그걸 애써 잊은 척하고 고작 한 시간 거리의 내 작은 방에서 조용조용 잘 논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기껏 지쳐 버리느라 바빠 아무것도 안 할 때도 굳이 굳이 혼자서 시간을 흘린다.


엄마가 죽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내일 내가 죽는다 해도 하나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아.

겪어보지도 않고 호기롭게 이런 생각들을 잘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참 행복하게 잘 산다고 안도한다. 날 때부터 우울감이라고는 덜어 놓고 나와서 내내 감정의 0점 값을 설렘에 맞추고 살았다. 엄마와 나 자신, 양측 모두 흡족하게 효도를 미리미리 해 둔 것, 항상 나 자신을 아끼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은 잘했다, 싶다. 정말로 당장 우주가 몽땅 사라져도 후회하지 않는 하루를 내일도 살아갈 거야. 어떤 내일이 온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아.


D: 난 정말 잘했던 것 같아, 후회 안 할 거야.
M: 정말 최고의 딸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맞장구쳐 주는 엄마가 있어서 매일 이렇게 건방을 떨며 사나 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말이 다가오면, 나이를 헤아려 보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