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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헨님 Mar 11. 2020

저는 일할 때가 제일 좋아요!라는 믿기 힘든 말

의외로 행복한 직장인입니다.

휴일 반나절을 미용실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거울을 잘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머리를 감겨 주고 길이를 다듬고 약을 바른 뒤 롤을 말아 주는 직원들. 그 동안 눈을 감고 있거나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읽었다. 따뜻하게 차를 다시 준비해 준다고 하거나 지금 어떤 시술을 하는 중인지 이야기하면, ‘네’하고 대답할 뿐이다.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 영양 공급하는 수분 앰플 발라드릴게요. / 조금 더 헹구고 싶은 곳 있으세요?”


“네. / 네. / 아니오, 괜찮습니다.”

지불하는 액수에 비해 나는 그다지 까탈을 부리는 손님이 아니다. 커트와 펌, 염색에다가 가장 고가의 케어까지 포함하면 매번 반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불한다. 3개월에 한 번씩 다녀왔더니, 금세 VIP 멤버가 되어 버렸다. 매 순간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는 슈즈나 백에 비하면, 훨씬 더 높은 빈도로 이미지를 어필하는 부분을 다듬는 일이다. 큰 액수를 지불하면서 관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니까 계속 할 수 있어요


온전히 스타일링을 맡기는 나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아주 싹싹한 20대 여자인데,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친절한’, ‘모든 손길에 온 정성을 쏟는’ 미용사라고 믿게 만들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까지 굳이 따라 나와서 발랄한 미소로 배웅하고, 4시간 넘는 시술을 하는 내내 온몸으로 상냥하다. 문이 닫히고 나면, 그 표정이 곧바로 건조하게 변해있을지도 몰라. 내내 서서 타인을 돌보고, 계속해서 민감하지 않은 화제를 골라 대화를 이끌어야 하면서 외모에 대한 적절한 칭찬까지 덧붙여야 하는 일. ‘진짜 먹고살기 힘들다’ 같은 현실 비하나 싸늘한 냉소가 따른다고 해도 백번 이해한다. 속은 무엇일지 몰라도 완벽하게 프로페셔널한 거지.  


그런데, 그녀에 관해서는 그런 반전이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놀랍다.


정말, 저렇게 양면으로 명랑한 직업인이 가능하다고?

넘쳐나는 ‘신고객 프로모션’들을 모른 척하고 우연히 발견한 그 선생님에게만 머리를 맡기고 있다. 그녀는 일주일에 단 하루 쉬고, 모두가 느긋한 주말 간에 더 틈새 없이 일하며 매번 깊은 밤까지 샵에 머문다. 머리를 식히느라 잠시 흐트러진 자세로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틈은 없을 것이다.


함께 나눈 대화 중 몇 가지는 너무 모범 예시 같아서 써놓고 보면 거부감이 들 정도다.
   
“선생님, 점심은 드셨어요?”


 내 예약은 토요일 11시였다. 나는 늦잠을 푹 자고 슬렁슬렁 샵으로 갔다.


 “그럼요~ 밥 먹고 왔지요, 제가 얼마나 잘 챙겨 먹는데요.”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힘들지 않아요?”


 아니요! 저는 일하는  ~ 좋아요!”

처음 만난 날에도 나는 다 들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로 십 대 중반부터 결정했고, 바로 시작해 내 길이라 확신했고, 그래서 20대인 지금 벌써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매 순간 미용일이 너무 즐겁고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까지 하는 거였다.


 “아시잖아요, 저 완전 잘하는 거.”


그 자신감을 온전히 믿어버린 바람에, 길게 묻지도 않고 그냥 다 맡긴다.  




너무 성실해질까 조심했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사축 인간> 같은 걸 읽고 문장을 갈무리하며 꼭꼭 새긴 신입사원이었다. 강신주가 책에다가 쓴 일에 대한 철학을 신념처럼 새기면서(최대한 에너지를 아껴 월급을 받는 지혜를 쌓으라 했다! 근면하지 말라고도 했다!) 회사에 온통 복종하게 될 것을 깊이 경계했다.


그리고 은근히 비웃었다. 너무 오래 일하고, 고작 직장이 삶을 깊게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는 삶을 사는 걸. 여러 관심사와 바삐 보내는 저녁, 회사 밖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걸 훨씬 쿨하다고 여겼었다.


그때라면 믿지 않았을 이 선생님의 말을 이제는 좀 알겠다. 일이 너무 즐겁고 그 안에서 행복하다는 감정. 직장인 네트워크 모임에서 발제자가 된 날, 업계의 닮고 싶은 분께 인사 메일을 올리면서, 함께 일할 때 가장 잘 맞았던 크루들과 모여 앉았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일로 인정받고 싶은 나인 걸. 업무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것도 안다.


절박하고 진심인 쪽이 훨씬 약자라고 믿었다. 그런데 진짜 더 잘하고 싶어서 자꾸 고민하고 묻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은 노력은 하나도 안 구질구질한 거다.


일이 정말 즐거워요,

 잘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을 소리내어 말하는 쪽이 진정 힙하고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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