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몬트리올에서 취직하다

홍콩 베이커리와의 인연

by 올리플래닛

캐나다에 온 지 12일째 되던 날 두 군데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홍콩 스타일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와 일식집이었다.

어디를 가고 싶다고 고를 상황이 아니었기에 두 군데 모두 최선 그 이상을 다해 면접을 봤다.

그리고 기적 같이 베이커리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대망의 근무 첫날.

내가 취직한 베이커리는 Atwater역에 위치해 있었고 사장님이 홍콩 캐나다 사람, 매니저는 대만 사람이었다.

긴장을 잔뜩 한 채로 아침 7시까지 출근해 머리 두건과 앞치마로 갈아입고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알고 보니 나 말고 출근한 새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

수습 기간 4일 동안 우리 둘을 지켜본 후 고용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경쟁심이 끓었다. 통장 잔고가 점점 줄고 있었다.

한 명을 뽑는다면 무조건 '나'여야 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가운데 나는 필리핀 캐내디언인 베테랑 돌로레스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매니저는 수시로 내게 와서 한 마디씩 던졌고 나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너 빵 이름 다 외웠어?" , "빵마다 가격 다 다른 거 알지?", "좀 이따가 부르면 와서 계산해, 오케이?"

빵, 쿠키, 케이크, 번(호빵 같은 따뜻한 베이커리) 등 종류가 50가지가 훨씬 넘는데 많은 것들이 비슷해서(예를 들어 위에 깨가 뿌려졌는지 아닌지에 따라 필링이 다름), 외우기는 커녕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진열된 빵의 태그들을 보며 머릿속으로 최대한 집어넣고 있을 때 매니저는 나를 불렀다.

"계산대로 와봐."

집에서 미리 캐나다 화폐를 꺼내 보면서 동전과 지폐에 익숙해 지기는 했지만, 계산대에 서서 손님을 마주하는 건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손님은 내 불어를 이해할까?"

매니저는 내 옆에 서서 내가 계산할 때 빵 포장을 도와주었다.

내 손가락은 물론 계산대 위 무언가를 누르려는 시늉은 했지만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공중에 떠있었다. 빵 가격을 아직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매니저는 팔을 뻗어 1.2불, 1.5불, 1.8불... 가격 버튼을 툭툭 찍어주었다. 그녀의 손은 거칠었지만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면 안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뒤 매니저는 그녀와 자리를 바꿔 내가 빵을 포장하게 했다.

빵은 개수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박스 크기가 달랐고 빵을 상자에 넣는 방법 또한 지켜야 했다.

어떤 손님은 박스에 넣을 만큼의 빵을 구매하지 않았지만 상자에 포장받기를 원했고 어떤 손님은 따로따로 포장을 해 달라고 했으며 또 어떤 손님은 비닐봉지에 각각 넣은 후 상자에 포장해 주기를 요구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매니저가 "오케이!" 혹은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돼!"하고 단호하게 외쳤다.

그 후 창고에 가서 음료 박스를 가져와 빈 음료를 채워 넣었다.


어느덧 퇴근 시간 오후 3시가 되었고 집에 오는 길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들을 하나 둘 넘겨 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일할 때 빵의 가격과 빵 사진이 담긴 모든 태그를 찍어둔 사진들이었다.

사진을 넘겨 보며 쓰러져 잠들기가 반복되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4일이 지난 후, 매니저는 내게 유니폼을 주며 말했다.

"x달러 이하의 빵은 마음껏 먹어도 돼. 오케이?"


꿈이냐 생시냐, 드디어 몬트리올에서 취직을!

캐나다에서 긴장을 이완시켜 잠드는 첫날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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