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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플래닛 Dec 12. 2021

방콕에서 만난 팟타이 천사

지갑을 통째 분실했다

싱가포르에서 방콕으로 날아갔다.

싱가포르에서 취업 비자가 준비되는 동안은 싱가포르에 있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가깝고 저렴하고 좋아하는 도시 방콕에서 지내기로 했다.


방콕에서의 화창한 둘째 날.

점심으로 팟타이가 먹고 싶어 방콕에서 베스트 팟타이 음식점들 중 나의 숙소 근처 위치한 곳을 한 곳 뽑았다.

그래, 오늘 점심은 여기서 먹는 거야!

나의 동남아 여행 패션 필수품인 선글라스 머리띠처럼 끼고 발에는 신은 듯 만듯한 얇은 싸구려 쪼리를 신었다. 에코백을 메고 신나게 걸어서 나의 허기를 채워줄 팟타이집으로 향했다.

10분 정도 걸으니 포장마차는 아니면서 건물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같은 곳이 나타났다.

지도 앱을 보니 파란 불빛(내 위치)은 정확히 목적지 앞에서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구나. 들어가자.

사람이 없어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은 뒤 태국어가 안 되는 나는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50바트짜리 팟타이를 성공적으로 주문했다. (50바트 = 약 1,800원)

아주머니는 주문을 받자마자 팟타이를 즉석에서 요리해 주셨고 나는 보답하기 위해 팟타이 곳곳에 라임을 뿌리고서는 빠르게 먹어 치웠다. 아삭한 숙주와 쫄깃한 쌀국수에 상큼한 라임향이 환상궁합이었다

분위기는 마치 동네 단골 볶음 김치 볶음밥을 먹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내 팟타이가 줄어가는 도중 점심시간인지 근처 회사원으로 보이는 태국인도 들어와 앉았다.

'내가 오니까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네. 허허. '


맛있는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 계산을 하기 위해 아주머니한테 가서는 에코백에서 지갑을 꺼내려 손을 넣고 에코백 안을 휘저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휘저어도 지갑이 만져지지 않았다. 에코백을 펼쳐서 머리를 박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통통한 브라운 지갑이 없다.

'분명 숙소에서 가지고 나왔는데 어디로 갔지?'

에코백에 구멍이라도 나서 빠졌나 봤으나 작은 구멍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누가 훔쳐갈 수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인적이 적은 길가를 1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왔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지갑이 없어졌다며 당황해했고, 이해할리 없는 아주머니는 고개만 갸우뚱하셨다.

숙소에 놔두고 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숙소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려 손짓 발짓, 울상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머니께서 태국어로 뭐라고 하시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겁쟁이 나는 그냥 가버리면 태국 경찰이 날 찾으러 올 것 같아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아까 들어온 정장 차림의 태국 청년도 마침 식사를 끝내고 계산하러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물불 가릴 때가 아닌 나는 그 청년의 옷자락을 붙잡고 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아주머니께 통역을 좀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아주머니와 웃으며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지폐를 건넸고 나를 보며 말했다.


 I already paid yours.
(내가 당신 팟타이도 계산했어요.)




그가 건넨 지폐는 그의 밥값을 계산한 것으로 생각했던 난 그 말을 듣고 "네??! 뭐라고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 일단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코쿤카. 땡큐소머치."하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도 잠시 감동이 밀려왔다. 너무 고마웠고 무엇보다 꼭 되갚고 싶었다.

식당을 나와 걸으며 간단한 영어가 가능한 그에게 괜찮으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숙소 가서 돈을 들고 회사 건물 앞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는 일터로 돌아가야 할 테니 이 방법이 제일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사코 부드럽게 웃으며 계속 괜찮다고 말했고 잘 가라는 인사 후 유유히 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태국 청년이 괜찮다고 말해준 것도 나는 운이 무척 좋았다.

숙소에 가서도 나의 지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도움을 받아본 것은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수 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는 더더욱.


지갑과 모든 신용카드, 신분증을 잃어버려 고생을 오지게 했지만 기억은 상대적인가 보다.

지금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 태국 청년의 낯선 친절만이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

아, 천사 그대,  정말 고마워요. 코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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