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있다면 꼭 한번 포멜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멜로를 모른 채 할머니가 됐다면 진심 슬펐을 거야.
내가 포멜로를 처음 맛본 것은 싱가포르에서였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과일 코너에 무척 커다란 노란빛 공 모양의 것이 눈에 띄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는 결국 하나를 사 왔고, 힘겹게 까서 처음 맛을 보고는 푹 빠져버렸다.
포멜로는 pomelo, pummelo, pamplemousse 혹은 과학에서는 citrus grandis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개인적으로 이름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 불러보고 싶다. 포멜로~~
하이브리드종이 아닌 자연종 시트러스 과일로 동남아에서 유래하여 중국 포함 따뜻한 나라들에서 재배된다.
생긴 것은 동그랗고 겉껍질은 진한 연둣빛부터 연한 노란빛까지 여러 가지 색이다.
안의 과육은 희거나 오렌지빛이거나 자몽 핑크빛이다.
이름 grandis에서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포멜로는 시트러스계의 대빵이다. 어쩐지 지금까지 포멜로보다 큰 시트러스 과일을 본 적이 없는데 가끔 개중에서도 큰 포멜로를 보면 농구공이 떠오르고는 한다.
실제로 큰 녀석은 농구공만큼 자라기도 한다고.
껍질을 까보면 알갱이가 거짓말 좀 보태 새끼손가락 한 마디의 1/4만 한데, 입에 넣으면 알갱이들의 모양새를 혀로 간질간질하게 느낄 수 있다. 톡톡 알갱이를 터뜨리기 시작하면 새어나오는 달달한 과즙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마른 오렌지처럼 마른 포멜로가 당첨 되기도 하니 알아두자.
아, 조각마다 입혀진 투명한 껍질은 두껍고 질기니까 꼭 벗겨 먹는게 좋다.
포멜로 맛은 오렌지나 귤보다 과즙이 훨씬 적고 자몽의 맛과 비교되기도 한다. 내가 먹어본 포멜로의 맛은 자몽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맛은 없었는데 향은 조금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포멜로를 매일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후들후들한 가격에 차마 매일 사 먹지는 못 했다. 동남아에서 과일이 비싸 봤자 얼마 하겠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보통 하나에 오육 천 원에서 비쌀 때는 만원, 이만 원 한다.
싱가포르 살 때 애용하던 온라인 마트 R마트에서 가격을 확인해 봤다. 태국 루비 포멜로는 싱가포르 달러 18불이 넘는다. 원화로 약 1.5만 원 돈이다.
종류에 따라 금액이 다를 뿐 아니라 나라/마트/시장에 따라, 시기에 따라서도 금액 변동이 있다. 가끔 시장이나 슈퍼에 가면 세네 조각만 넣어서 팩에 팔기도 한다. 세네 조각이면 하나 사는 값보다 훨씬 저렴하고 어차피 다 먹으면 배도 터지니 이런 준비된 포멜로를 종종 사 먹었다. 껍질을 까는 노동을 피할 수 있기도.
그렇다면 동남아에서는 포멜로를 어떻게 즐겨 먹을까?
동남아 사람들은 포멜로를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데 많이들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고 디저트로 먹기도 한다. 샐러드는 동남아식 해산물 샐러드에 넣어 즐겨 먹는다.
또 포멜로 위에 소금과 칠리파우더를 뿌려 먹기도 하는데 이 방법은 나는 동남아에서 몇 년을 거주한 후인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
동남아에 살며 포멜로와 함께한 기억은 다양하다.
캄보디아에서 여행 중 들린 휴게소에서, 싱가포르 마트와 시장에서, 친구들 집에서, 말레이시아 길 위에서 등 곳곳에서 만난 포멜로는 내게 매번 작은 행복이었다.
동남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동남아 국가를 방문한다면 포멜로를 꼭 한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맛있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C가 풍부하고, 강한 항상화 작용, 면역 체계 강화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갑자기 든 생각, 요즘 온난화로 우리나라에서 망고와 올리브를 재배한다는데, 나 노후에 포멜로 농장 계획해봐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