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갈라파고스는 말이야

첫 아일랜드, 산크리스토발 섬의 모습들

by 올리플래닛

갈라파고에는 무려 13개의 '주요 섬'이 있다.

그중에서 비행기로 착륙할 수 있는 섬은 두 곳이 있는데, Baltra island와 San Cristobal island이다.

나는 이중 더 많이 이용되는 루트인 San Cristobal섬을 통해 들어가기로 했다.


짐을 찾고 산크리스토발 공항 밖으로 나오니 청량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이게 산크리스토발 섬의 바람인가.

이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아,아,아... 정말 예약한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막막했는데, 다행히 바라던 대로 트럭 택시가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에서는 숙소 형태가 모두 개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라고 보면 된다. 호텔이라고 불려도 개인이 만든 부티크 호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형 체인 호텔이 없어 반가웠다. 모든 숙소가 개성이 있다는 말일테니...


갈라파고스에서 나의 첫 숙소는 Palma Delmar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최대한 가성비 좋은 곳으로 예약을 했는데 지내보니 잘한 선택이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사시며 운영하는 집으로, 자식들도 자주 방문해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였다.

체크인을 한 뒤 집을 구경했다. 넓은 마당에는 작은 오두막, 야자수와 선인장 같은 각종 식물, 빨랫줄 등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우리 할머니가 사시는 시골집처럼 정겨움이 뭍어났다.

렌트하시는 개인룸 몇 개는 싱글룸과 작은 테이블이 있는 심플한 공간이었다.

부엌은 공용인데, 낡지만 깨끗하고 큰 창이 있어 밖이 잘 보였다.


이제 숙소 구경도 끝났겠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볼까?

숙소를 나서는 때마침 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앞의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예쁨도 지워져 버렸다.

집들의 대부분이 시멘트 벽돌로 지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 회색빛 집들이 거리를 더욱 잿빛으로 칠해버리는 것 같았다.

'아, 제주도도 이렇게 자주 변하고는 했지. 섬 날씨가 이렇게 거칠었지.'


내가 너무 갈라파고스에 대해 환상을 품었나?
하지만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진짜 갈라파고스인걸.


마음을 다잡고 다시 찬찬히 걸으며 느껴보기로 했다.


'어랏, 저 멀리 보이는 흰색 물체는 뭐지?'

가까이 다가가니 강낭콩 두 알에 바게트 두 조각을 담은 녀석이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꺄, 이렇게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이 섬에 살고 있다니. 보아하니 슈퍼에 사는 듯했다.

'어릴 때 슈퍼 딸이 제일 부러웠는데, 너도 맛있는 거 많이 먹겠지? 그러길 바랄게.'



점심 먹을 때가 되어 레이더를 켜고 걷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가족이 식당에서 걸어 나온다.

핸드메이드 버거집이었다. 그래, 오늘은 버거를 먹어야지.

주문한 버거가 나왔을 때 코웃음이 새어져 나왔다. 버거를 고정시킨 막대 위에 살짝 익힌 듯한 버섯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집 쉐프 아이디어일까? ㅎㅎㅎ


부른 배를 안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지도를 보니 좀 더 걸으면 해안가가 나온다고 해서 거기까지 가볼 참이었다.

그나저나 대낮인데 이곳은 무척이나 고요하다. 날씨도 어두운데 고요하다 못해 무서워지려 했다.

길거리에 왜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일까? 이 동네 주민들은 다 뭐 하고 있지?

그렇게 두 눈으로는 사람을 찾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러다 해변가에 거의 다다랐을 때 건너편 테이블에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드디어! 안녕하세요.’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해변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고개를 빼꼼히 내놓았다.

'낮잠 다 잤니?'


그렇게 다시 환해진 하늘 아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넋을 잃고야 말았다.

와......

드넓은 바다 위 둥둥 떠다니는 배들을 배경으로 살면서 처음 보는 수많은 바다사자들이 뛰놀고 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난간에 기대서 가만히 이 친구들을 관찰했다. 혼자 쉬는 애들도 있고 곁을 내어주고 무리로 뭉쳐 쉬는 애들도 보였다. 어느 녀석 하나 어색한 것 없이 제집인 듯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구경하는데, 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소리가 나는 광장 쪽으로 가보니 아이들의 댄스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런 곳에서 댄스 수업이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긴 댄스 스튜디오가 항상 필요할까? 얘들도 이렇게 광장에서 신선한 공기 맞고 동네 주민들 응원도 받으며 춤추니 더 신나지 않을까?

나도 흥이 나서 구경했다. 내심 아는 노래가 나올까 기다렸는데 다 모르는 노래였지만 어깨는 들썩였다. 보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들도 신이 날 테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었다. 동네에 활기도 돌고 말이다. :)


시장에 들러 저녁거리로 계란 몇 알을 사서 집으로 가는 길.

혼자 노는 바다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귀여운 얼굴로 나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하마터면 깜짝이야 하고 외칠 뻔했다. 건물 문앞에서 거대한 녀석을 만난 것이었다.

‘너무나 생뚱 맞은 자리에 있잖아. 여기선 일상이겠지? 사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인기척에도 꿈쩍도 안 하는 걸 보니 깊은 잠에 들었나 보다.

남은 길은 또 다른 녀석의 잠을 방해할까 조금은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동네를 돌고 나니 낯선 곳에 대한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일상 속 사람(+반려견)밖에 없어서 그야말로 우리가, 내가 주인인 줄 알고 살았는데, 몰랐던 지구 주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살고 있다는 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글로는 알고 있었지만 살면서 오늘같이 실감난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산크리스토발 섬에서는 사람과 바다사자들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기 전 환상을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 24시간 푸르르고 햇살이 비추며, 모든 길거리가 푸르고 멋지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오늘 겪은 짓궂은 날씨, 춤추는 아이들, 투박한 건물들, 드넓은 바다, 뛰놀고 휴식하는 바다사자들, 공존... 이 모든 것이 갈라파고스임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앞으로 2주 동안은 어떤 갈라파고스 모습들을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숙소 화분 위 스톤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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