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느낌 그대로
지난 십여 년 동안 오고 또 오다 보니 벌써 네다섯 번째 방문이다.
이번에 통영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잠시 걱정도 했다.
하지만 곧 다시 설레었던 걸 보면 단 한 번의 같은 순간이 없듯 여행 또한 그러하다는 걸 마음으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구 약 11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통영에서도 소소하게 변화가 생겨난다.
익숙한 길을 걸으면 그때 그 집을 떠올리며 반갑고, 그 가운데 작은 변화들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우며, 낯선 길을 걸으며 새로움을 마음껏 느껴보는 것은 여행의 설렘을 안겨준다.
이번 여행에서는 관광안내소를 방문했는데, 지도를 보며 통영에서 가보지 못한 곳이 아직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낮에 강구안을 한 바퀴 걸으니 저 너머를 꿈꿀 수 있는 드넓은 바다가 있고 어떤 근심도 바싹 마르게 해 줄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서일까? 사람들에게서 여유의 냄새가 났다. 나 같은 이방인 한 사람쯤은 품어주는 데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섬, 바다, 산, 모든 게 갖춰져 풍부한 먹거리만큼 문화도 활짝 꽃을 피워 이름만 대면 알 여러 예술가들이 나고 자라거나 머문 곳이 바로 통영이다.
사실 이전에도 대강 그런 줄은 알았지만 이번에 와서 조금 더 보고 배우니, 이곳은 정말 한국의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의 바다를 강렬하게 그려내는 화가 김재신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본인은 예술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니 통영의 매력은 어디까지일지.
콩을 직접 볶는다고 하여 들어간 카페에서는 통영 르네상스 시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와도 와도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걸 보니 '언제쯤 통영을 다 알까요~'가 떠오른다. 그렇다, 지금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앉아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을 들으며 이 글을 쓰는 중! ㅋㅋ
강구안도 낭만 있지만 통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는 봉수골이다.
몇 년 전 봄날의책방 서점을 찾아 처음 왔었는데, 반해버렸지 뭐야.
이번에 오니 이곳이 점점 더 멋진 동네로 변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왜 멋진 곳이냐, 미륵산 자락 아래에 용화사, 그 아래 전혁림 미술관,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새롭거나 오래된 맛있는 밥집들, 봄날의책방, 개성 있는 카페, 찻집 등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이 작은 동네를 가득 채우고 있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 방문을 계획했던 '쓰는 마음'이 이사를 간다고 하필 문을 닫아서 많이 아쉬웠는데, 알고 보니 내가 묵고 있는 봉수골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나다니다가 빈 점포 유리창에 곧 이전한다고 쓰여 있는 걸 보았다.
아, 좋아라. 다음에 오면 모든 걸 여기서 해결 가능하게 되는 건가~? 좋아하는 곳들이 모두 모여있네.
나 같은 외지인이 매력에 빠져 이 동네에 한 달 살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보이지 않지만 이 작은 곳들이 모여 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놀랍다.
이 작은 도시의 작은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 무엇 덕분일까.
내가 느낀 바로 추측컨대 이웃 간의 유대와 저마다 분야에서 실력 있는 분들이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오랜 유지가 가능한 점이 아닐까 싶다.
이 동네 5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되면 무척 동네가 안 예뻐질 것 같아서 높은 건물은 들어오지 않았으면 한다.
(욕심일 수 있지만) 지금 느낌 그대로 봉수골다운 모습으로 오래 지속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