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종종 삼천포로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최대한 말을 경청하는 척하며, 아니 실제로 평소보다 더 경청하며 다시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할 틈을 찾는다. 하지만 무릇 쓸모없는 게 예쁜 법이며, 쓸데없는 이야기가 더 재미난 법. 한 번 탄력이 붙은 수다는 멈출 줄 모르고 결국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러야 끝이 난다. 어떻게든 1초라도 빨리 화제의 흐름을 원상 복귀하려는 나의 집중력은 그저 더 재미나게 얘기를 듣게 할 뿐이다. 얘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미가 동하거나 인간 된 도리상 맞장구를 치며 연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얘기는 점점 길어지고 나의 퇴근 시간은 멀어져만 가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바쁘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일 때가 많다. 누가 와서 취재를 할 만한 사람은 무릇 바쁜 삶을 살고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내가 아닌 상대의 시간 때문에 필요한 질문과 답을 듣지 못한 채 인터뷰가 종료되면 초조함에 휩싸인다. 이걸로 페이지를 채울 글을 쓸 수 있을까? 초보 기자인 나는 불안, 초조, 근심, 걱정에 휩싸이며 안 그래도 없는 머리숱에 쥐어 잡았다가 아차 싶어 내려놓는다.
다음날 사무실에 앉아 하얀 백지의 모니터를 보고 있노라면 그 하얀 기운이 나의 뇌에 전이되는 듯하다. 하얀 게 비어버린 백지 같은 머리와 그 기운은 점점 아래로 내려앉아 나의 얼굴까지 창백하게 만드니. 공백의 눈이 나의 전신을 뒤덮는 셈이다.
하지만 어쩌랴. 인터뷰는 끝났고 할당받은 잡지의 페이지는 채워야 하거늘. 해병대는 아니지만 안 되면 되게 할 것이니. 어제 만난 인터뷰이의 조사 한톨까지 흘리지 않으며 어제 보고 느낀, 나의 오감에 와닿은 모든 걸 상기하려 온몸의 감각을 되돌린다.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으며 단어 하나라도 늘려 쓰기 위해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옛말까지 격언 삼아 살을 붙여 나간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공갈빵마냥 분량을 채운 글은 대체로 평이 좋다. 오만가지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들은 인터뷰보다 오히려 이렇게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쓴 글이 호평을 받는 이유.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는 글을 중구난방 정신 사납게 만든다. 물론 수많은 재료를 알맞게 조합해 적절하게 풀어내면 금상첨화겠지만 난 누구? 마흔의 초짜 신입 아닌가. 오히려 방대한 정보는 주제 없는 공허한 글을 만들 뿐이다. 반면 정보가 적었던 인터뷰는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춰 주제가 뚜렷한 글을 쓰게 한다.
십여 년 전 당시 잠시 몸담았던 잡지사에서 편집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글에 주제가 없어!” 그래... 그랬던 것이다. 이것저것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정신 없이 살아온 나의 삶처럼 내 글에도 주제가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야 알 수 있는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불혹(不惑)인 지금부터 이리저리 휘청이며 살지 않아야겠지. 10년 후엔 내 글에 뚜렷한 주제가 보일까? 10년 후엔 나는 누구인지 깨닫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