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었다.

위선의 장례식

by 수리



엄마가 돌아가신 날은 공교롭게도 친할머니의 생일이었다.


그 지독한 우연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을 때, 친척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뗐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시어머니 생일에 맞춰 떠나냐.”


죽음조차 누군가에게는 저주나 복수의 도구로 해석되었다. 평생 그 집안의 쇳소리를 견디며 스러져간 엄마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말이었다.


엄마라는 방어막이 사라진 뒤, 나와 동생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탈출했던 그곳으로, 나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쇳소리는 여전했다.






아빠는 매년 새해가 되면, 절에 갔다. 그리고 가끔 사주도 같이 보러 가는데, 어느 날 돌아온 아빠는 할머니가 너무 건강해서 본인보다 더 오래 살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 가족은 모두 수긍했다.


할머니는 조금만 아파도 엄청 아프다고 과장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엄마와 같이 위 내시경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과는 염증이 아주 조금 있는 것뿐 큰 이상은 없다 했다. 그 뒤로도 다른 곳이 아플때마다 병원을 찾아가면 ‘엄살이 심하셔’ 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기에 할머니의 건강엔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운명론도 코로나라는 변수는 비껴가지 못했다.


온 세상이 단절되었던 그 시기, 할머니는 코로나에 심하게 걸려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다녀가는 병원마다 모두 진료거부를 당했다.


평생 약자라 불리던 존재가 진짜 도움이 필요한 순간, 세상은 그렇게 등을 돌렸다. 결국 할머니를 태운 구급차는 돌고돌아 다시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할 방도도 없이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쉼없이 아프다는 쇳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홀로 돌아가셨다.

일곱 자식 중 그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한 채.






장례식장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피를 나눈 할머니의 자식들은 몇 년 만에 같이 모여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일상을 공유했다.


첫째 고모는 몸이 아픈 셋째 고모 앞으로 보험을 들어 보험금을 자기가 모두 챙긴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 더 긴장되었다.


둘째 고모는 상복을 입은 채 청첩장을 꺼내 돌렸다. 딸의 결혼 소식이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떠들다가도, 정작 식장에 온 딸에게는 "이런 데 오래 있으면 안 된다"며 서둘러 돌려보냈다. 그들은 서둘러 자신의 엄마를 지워냈다.


그리고 그 위선의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새엄마였다.


우리를 생각하며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빠 자신이 외로워서 데려온 또하나의 존재. 친자식들이 수십 년을 도망쳐 온 그 소음을 묵묵히 받아내며, 끝까지 할머니 곁을 지킨 사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녀만이 장례식장 구석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족이 무엇인지, 피가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면 평생 보고 싶지 않았을 어른들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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