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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Oct 24. 2024

외할머니의 눈물

우리 엄마는 여섯째 중 막내였다. 엄마는 20대에 결혼했지만, 어린 두 딸을 두고  30대에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천국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엄마보다 나이가 많을 테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외할머니는 나와 내동생을 볼때마다 울었다. 외할머니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어린 마음에 나는 외할머니가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운다고 생각했다.


엄마 없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나는 괜찮았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울때마다 내가 꼭 불쌍한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싫었다. 어쩔땐 외할머니에게 그만 울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딸을 잃은 뒤에야 외할머니가 왜 그렇게 많이 우셨는지 이해하게 됐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들이 불쌍해서 우신 것이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막내딸이 그리워서 우셨던 것이었다. 우리는 외할머니에게 죽은 막내 딸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만드는 존재였다.


나는 오랫동안, 아빠를 제외하고 내가 엄마를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우리 엄마는 내 엄마이기 이전에 외할머니의 딸이었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품었고, 낳았고, 키웠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내가 엄마를 위해 울지 않을 때도 항상 울고 계셨던 것이다.


다섯 달 동안 품었던 내 딸 콩콩이를 잃은 뒤 외할머니가 계속 떠올랐다. 세상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 엄마가 죽었을 때 외할머니도 그랬을까.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고,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말은 상처가 됐다.이 아픔을 겪지 못한 이들의 조언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시 임신한다고 해서, 새로운 아기가 생긴다고 해서 내 딸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들은 이 일을 직접 겪지 않아서 모르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가슴 한 켠에 남아있을 슬픔인데 말이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이 무거운 슬픔을 마음 속에 어떻게 간직하셨던 걸까.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지금에서야 나는 외할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게 됐다. 젊은 자식을 앞서 보내는 참척의 아픔을 이고 살았던 나의 외할머니. 차라리 외할머니의 슬픔을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영원히 내 딸 콩콩이를 위해 울 것이다. 이 세상 모두가 내 딸을 잊은 뒤에도.


My mum was the youngest of six children. She married in her 20s and passed away in her 30s, leaving behind two young daughters. Now, as I’ve grown older, I’ve realised that I’m older than my mum ever had the chance to be. Each time my Grandma saw me and my younger sister after my mum’s passing, she cried. Her tears seemed never-ending. As a child, I didn’t like seeing her cry; I thought she pitied us.


Growing up in a single-parent family, I believed I was fine. But watching my Grandma cry

constantly made me feel like I was someone to be pitied. I didn’t like it. Sometimes, I even

asked her to stop crying. It wasn’t until I lost my own daughter that I finally understood why my Grandma wept so much. Her tears weren’t for my sister or me. They were for her youngest

daughter, the one she lost far too soon. Every time she looked at us, we were living reminders of her painful loss.


For years, I thought no one could miss my mum more than I did except my dad. But I was

wrong. My mum was my Grandma’s daughter first. She carried her, gave birth to her, and

raised her. That’s why my Grandma always cried for my mum, even when I couldn’t.


After I lost my baby girl, Yeri Sofia, five months into my pregnancy, I found myself thinking of

my Grandma. Losing Yeri felt like my world had shattered. Did she feel the same? Everything

I once loved became meaningless, and no words could comfort me. In fact, some words only deepened my pain. People meant well, but they didn’t understand. No future pregnancy could replace the daughter I had lost. The grief of losing her was permanent. I wonder how my

Grandma carried that much weight in her heart until she passed away.


In that dark time, I began to understand the unimaginable depth of my Grandma’s sorrow. I wish I never had to understand her grief. I will forever cry for my daughter, Yeri Sofia, long

after the world forgets her — just like my Grandma cried for my m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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