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코로나19는 많을 것들을 멈추게 했다. 처음 겪는 질병에 대한 공포로 한 집에 사는 식구들까지도 조심해야 했다. 초창기 감염자에 대한 격리가 진행되었다. 1월 추운 날 남편이 판정을 받았고, 격리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보일러가 멈췄다. 토요일이었다.
나의 배움도 멈췄다.
엔데믹이 선언되고, 조심스럽게 안전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년 가까이 움직이지 못했던 나의 배움도 다시 움직일 계획을 세워야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의 전환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조금은 들뜬상태였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잘 지냈어요?"
반가운 분의 목소리였다. 나를 가르쳐주신 민화 선생님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안부를 전하고 나자, 선생님께서 민화강사를 해보라 신다. 문화센터에 강사자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가르칠 자격은 이미 충분하다고 걱정을 말라 신다.
그때를 생각하면 '기회'라는 말이 떠오른다.
불현듯 찾아온 기회. 5년 전부터 간간이 나에게 강사 제안을 하셨는데 마냥 망설이기만 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아직이라며 극구 머리를 숙였던 나였다. 그런데 그날은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에게 완전히 소망이 무르익은 날이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나는 민화강사가 되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서 주민자치센터에서 제의로 지원을 하고 2개의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4년이 흘러 좋은 수강생이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강사지만 동생처럼, 조카처럼, 손녀처럼, 동료나 사수가 되었다. 민화 그리는 법과 민화 이야기를 하다가 위로와 격려와 웃음과 미소와 동료의식을 나누고 있다. 그림이 얼마나 완성도 있게 정확한 시점에 끝나는가 보다는 스스로의 만족과 완성이 된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나의 민화 강의는 결승점이 없는 마라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