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철도에서 영종도를 지나며
전차에 올라타 빼곡이 들어찬 좌석들 한가운데 간신히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나는, 까닭 없는, 십여 분 남짓한 공상에서 깨어난 끝에 무릎팍에 고이 모셔둔 책장을 아무렇게나 펼친다. 그러나, 본디 예상과는 달리 나는 하나도 글줄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다. 머리 뒤편의 창문에서 떨어지는 빛과 음영의 조화가 내 정신을 온통 앗아가버린 것이다. 신비스러운 창공이 던져 준 이 묘한 블라인드는 오른쪽 지면, 위쪽 삼분의 일 지점에서 조용히 계류돼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내 감각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묵지근한 사념의 후위로부터, 시선의 최전방에 문득문득 등장하는 이 명멸하는 조각들은 차츰 중첩, 분리되고 이반하며 뒤얽히면서, 이 세상에서 눈뜬 이래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기하학적 패턴들을 형성한다. 해와 엄폐물의 상대적 위치가 지속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무형의 그림자라는 옅은 회색의 차양은 서서히 아래로 끌어내려진다.
눈길은 얇은 소설책 85페이지 어딘가에 비끼듯이 고정된 채, 나는 종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또 줄어드는 무감각한 상념들 사이를 하릴없이 부유한다. 어느새 유리창을 투과한 차일막은 점점 아래를 향한 하강을 멈추고, 약간 빛이 바랜 캔버스는 오롯이 밤의 빛깔을 띤 검은 잉크에 잠긴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는다. ㅡ
영종, 운서로 가는 길목. 바다, 섬들, 갯벌이 펼쳐진다. 붉은 해조류로 뒤덮인 주먹만 한 바위들이 널부러진 진창의 가늘게 패여진 틈새로, 더러운 회청색 개울이 기다랗게 굽이쳐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