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가능한 불완전함을 찾아서
제가 올리는 모든 글들은 세상을 향한 '저라는 존재의 전시'이기에 앞서, '인류의 AI와의 공존'이라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저 자신에게 답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바야흐로 정보의 대홍수 시대다. ChatGPT를 위시한 생성형 AI의 도래 이전에도, ㅡ 미 국방성의 프로젝트로부터 발족한 ㅡ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초연결시대의 개막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소화 가능한 양을 아득히 초월하는 텍스트들로 우리 뇌를 범람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타이핑 몇 번, 터치 한두 번이면 누구나 껌 씹는 것보다도 쉽게 읽을 거리를 바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뿐만인가. 눈 떠서부터 잠들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메신저와 소셜 미디어의 폭격은, 인간 그 자신이 이룩한 문명의 이기를 스스로 놓아둔 채, '디지털 디톡스'라는 자발적인 원시 문명으로의 회귀를 희구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2016년 알파고가 인류 최후의 전사 이세돌을 5전 4승으로 K.O. 시킨 이래 침묵에 가깝던 근 10여년의 세월이 무색해지게, 세계 문명은 지금 급속도로 AI를 중심으로 재편되며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화일로를 내달리고 있다.
위와 같은 정보의 대폭발이라는 트렌드 위에서, 거대 언어모델(LLM)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거나 다름이 없다. 무한대로 증식하는 "그럴 듯한 거짓들" 사이를 거슬러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로서, 작금에 요구되는 제1의 덕목이 바로 디지털 문해력이다. ㅡ 그 말인즉, ㅡ 무엇을 읽을지보다도 ㅡ 반대로 ㅡ 무엇을 읽지 않을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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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글이라면 보다시피 포털 사이트만 가도 썩어난다. (이미 쓰여진 이 글만 하더라도 그렇다.) 앞으로 쓰여질 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이 앞뒤로 과거와 미래 사이의 샌드위치가 된 상황에서, 나는 키보드를 치는 매 순간마다 "왜 너는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부와 명예가 있어서? 개소리다. (이거 한다고 돈 한 푼 안 나온다.) ㅡ 아니면 심심해서? 넷플릭스가 시간 죽이는 데는 백 배는 더 효과적이다.
그도 아니면 배운 게 도둑질이라? 그래, 차라리 관성(慣性)이 타성(惰性)을 이겼다고 말해볼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침녘부터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 손으로 쥔 스마트폰 노트 앱의 반짝이는 커서를 찌푸린 채 응시하면서 다른 한쪽 손으로는 얼굴 밑턱을 쥐어뜯는 아름답지 못한 자세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놀이하는 인간'으로서 심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데 굳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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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게 반드시 완벽해야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내 글은 벌써 대번에 실격이다. 하지만 나는 (게으르나마) 10년 전에도 써왔으며 지금도 쓰고 있다. 아마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쓸 것이다.
왜냐고? 거창한 이유 다 집어치우고, 내가 바로 나의 첫 번째 독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가 머리털을 뜯으면서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문장부호를 다시 고치는 것은,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녹여낸 사유의 바다로부터 나를 새롭게 빚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어제의 나로부터 내일의 나에게로 띄우는 편지다. 앞으로 쓸 모든 글들로 인해, 나는 그것을 쓰기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탈태하며, 나의 묵은 찌꺼기를 토해 낸 자리를 새롭게 올라올 생각으로 다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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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마리의 원숭이와 타자기가 있어도 셰익스피어는 나올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LLM의 '다음 토큰 예측' 알고리즘은 머잖아 STEM 분야에서 인류의 지능을 초월할 것이 이미 확실시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두루 갖춘 완벽한 글은 아마 수년 내로 이 세상에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 ㅡ 하지만 그 사실이 지금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는 내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드는가? ㅡ 만약 100만 명의 괴테, 100만 명의 호메로스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들과의 접점을 추구하게 될 것인가?
미리 고백한다. 나는 AI와 결연코 실력을 앞다투지 않으려 한다.
"우열이 없는 주관적 예술의 영역으로 도망치려는 것이냐?"라고 혹자가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러면 인공지능과 정면승부를 회피하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는가? 내 답은 '그렇다'이다.
내가 몇 시간을 고민해서 겨우 뱉어낼 수 있는 문장을, 그보다 훨씬 능가하는 표현을 AI가 불과 1초만에 수백 개씩 토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질투하지 않으련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오랜 세월 골머리를 앓게 한 수학 난제를 풀고, 작곡을 하고, 뛰어난 명화를 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순간, 지금-여기 존재하는 나를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만일 이 우주의 인과가 똥 만드는 기계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기계가 될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태어나서 겪었던 삶을 살아낸 인간은 최소한 이 우주에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볼품없고 초라할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지닌 무늬는 세상에 고유한 그것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섭리가 강요해 온 이 피할 수 없는 역겨운 삶을, 끝끝내 견디고 살아낸 훈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