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의 숲에서 보낸 400여일의 기록
열아홉 나이였나? 사춘기 들어서면서 시작된 우울증으로 근 2년 가까이를 골골대다가,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게 도서관 출퇴근이었다. '고전문학을 무조건 하루에 1권씩 읽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문지방이 닳도록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걸핏하면 출몰한 벽돌책들 때문에 300권만 겨우 채웠다.
개.백.수.쉐키였기에 허용되었던, 온전한 1년 간의 유배와 몰입. 술회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도서관에 가는 길마다 매일 책 냄새를 맡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그 활자의 미로에서 무한정 헤매이다가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그것은 시대와 지리를 뛰어넘은 인류 최고의 지성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키웠던 시간이었고, 초월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백기투항, 그리고 자발적인 복속을 뼛속까지 새겼던 400여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내 모든 경험의 준거는 언제나 스무 살의 도서관이었다. 살다 보니 그 이후로 비록 그때만큼은 책을 가까이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20살이었던 내가 도서관에서 보냈던 1년이, 내 운명을 영원히 바꿔놓은,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 같다는 생각을 나는 지금도 종종 한다.
* * *
여기서부터는 여담인데.
유소년 시절부터 청소년기와 청년기 초중반(취준, 본격적인 사회 진출 전)까지는 '나라는 자아'의 공백에 연료가 차오르는 시기인 것 같다. 그 뒤로는 내면에 축적된 유동체를 응결시켜서,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부딪치고 깎여나가며 복합적인 자아를 조각해 나가는 단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