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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Dec 24. 2021

19화_러너에게 근력 운동이 필요한 진짜 이유 5가지

 덤으로 얻은 근력 운동의 매력

회원님, 킥을 세게 하고 물타기를 하면 몸이 쑥 올라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다. 자유형부터 시작해서 배영, 평까지는 진도가 쭉쭉 나갔다. 평은 같이 수업받는 친구들 중 내가 가장 자세도 좋고 속도도 빨라서 강사님께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접영이 문제였다. 강사님처럼 팔을 활짝 펼치면서 날듯이 멋지게 물 밖으로 솟아올라야 하는데, 몸을 꿀렁꿀렁 대다가 간신히 고개와 팔을 물 위에 빼꼼히 내밀었다. 2주 정도 집중해서 접영만 연습했는데도, 도무지 자세가 나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작은 좌절감을 안은 채 수영을 그만뒀다.  



20년 후, 동네 수영장에서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여전히 평은 잘하는데, 자유 하는 방법을 잊어서 기초반에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수영을 했지만 어릴 때 배웠던 걸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며칠 만에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기초반 에이스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접영이 내 발목을 잡았다. 처음엔 팔은 쓰지 않고 다리를 모아 차서 웨이브로 앞으로 가는 것부터 연습했다. 몸 전체에 힘이 없어서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했다. 그런데 상체를 일으키면서 팔을 앞으로 던지는 걸 연습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유연성을 비롯해 코어와 광배근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잘하지 못하니 흥미를 잃어갔고, 결국 또 기초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수영을 그만뒀다.       



근력이 부족해서 두 번이나 접영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으면서도, 사는데 특별한 불편함이 없어서 몸의 외침을 외면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의 별의별 순간에 '근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출산 시 배와 항문에 힘을 주라고 할 때, 허리를 크게 삐끗했을 때, 꼼지락대는 아기를 씻길 때, 오랜 시간 설거지를 해서 무릎이 아플 때, 장난감 나사를 돌릴 때, 뱃살이 축축 아래로 늘어지는 걸 느낄 때 등. 심지어 잘 때도 몸의 근육들이 탄탄히 받쳐줘야 자고 일어났을 때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달리면 달릴수록, 더 먼 거리에 도전하고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선 하체 근력이 키워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달리기를 하는 데 근력 운동까지 추가로 하는 건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딱 10번만 해보자'라고 마음먹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아파트 내 헬스장에서 일주일에 2번씩 개인 PT를 받았다. 목적은 일명 자연 복대라 불리는 허리 주변 근력을 강화하고, 하체를 단단하게 키워서 더 능숙하고 멋진 장거리 러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력 운동을 체계적으로 해보니 단순히 하체 힘만 길러지는 게 아니었다. 잘 달리기 위해 필요하지만 특별히 관리하지 않았던 등, 어깨, 배, 엉덩이 등 온몸의 근육들을 자극해서 균형 있게 키울 수 있었다. 근력 운동을 통해 내 몸 구석구석에게 안부를 묻고, 생기를 불어넣으며, 강하게 단련하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었다.



달리기도 초보, 근력 운동은 초초 초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러너에게 근력 운동이 필요한 진짜 이유'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하체 힘을 강하고 균형 있게 키울 수 있다.


장거리 러너라면 누구나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빠르게 달리는 자신을 꿈꾼다. <마라톤>의 저자 제프 겔러웨이는 '빨리 뛰기의 열쇠는 얼마나 다리를 빨리 움직이느냐에 있다.'라고 말한다. 근력 운동으로 하체에 힘을 키우면 발로 땅을 강하게 차며 앞으로 나가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지구력을 발휘해서 끊임없이 발을 구르며  햄스트링이나 종아리 통증을 느끼지 않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다.


또 한 가지 다리 전체의 균형 있는 발달을 위해서도 근력 운동이 필요하다. 달리기를 하면 주로 다리와 허벅지, 허리 뒤쪽 근육에 자극이 많이 가서, 뒤쪽만 튼튼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앞쪽 근육들도 규칙적으로 강화시켜줘야 한다. 나는 하체 운동으로 스쾃, 런지, 힙 브리지, 힙 힌지 이 네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하체 힘이 생기니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고, 먼 거리를 달려도 신체척, 심리적으로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    




둘째, 팔 흔들기, 일명 팔 치기를 더 잘할 수 있다.


팔 치기는 달릴 때 팔을 리듬감 있게 앞, 뒤로 흔드는 걸 말한다. 러닝 전도사 안정은은 팔 치기를 익혀 10Km 기록을 1주일 만에 무려 2분이나 단축했다고 한다. 팔 치기의 효과는 속도뿐만이 아니다. 팔 치기를 정확하게 하려면 가슴을 내밀고, 어깨는 내리고, 척추는 곧게 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달리는 자세가 좋아지고, 호흡도 신경 써서 하게 된다. 언덕을 오를 때도 빠르게 팔 치기를 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팔 치기는 달릴 때 몸통을 기준으로 팔꿈치를 뒤로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흔드는 것이 정석이다. 이게 말로는 쉬운데 직접 해보면 팔을 뒤로 밀어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나는 근력 운동을 하면서 팔 치기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을 깨달았다. 바로 어깨 운동을 통해 어깨 힘을 키우고, 등 운동을 통해 날개뼈를 모으고, 등 근육을 조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깨 운동과 등 운동을 정말 공들여하고 있다.




셋째, 바른 자세로 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달릴 때 바른 자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른 자세란 몸의 중심이 잘 잡히고 중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자세를 뜻한다. 나는 무릎과 허리 통증을 겪고서야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다. 달릴 때는 몸을 꼿꼿하게 땅과 수직으로 만들고, 가슴은 펴고, 척추는 곧게 세워줘야 한다. 전신의 근육을 고루 사용해서 중력을 포함한 여러 가지 저항에 맞서야 한다.


따라서 하체뿐만 아니라 상체 근육인 배근, 복근, 가슴근, 어깨근 등을 근력 운동을 통해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상체 근력을 키워두면 달릴 때 신체의 기능이 최대로 발휘되어서 힘을 적게 들이면서도 근육을 통제할 수 있다. 특히 나는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 어깨가 말리고, 등이 굽고, 엉덩이가 빠지는 등 자세가 무너지곤 했는데, 상체 근력 운동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넷째, 복식 호흡을 잘할 수 있다.


오래 안정적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호흡법이 매우 중요하다. 폐를 통해 몸으로 들어온 산소는 몸 곳곳의 세포로 운반되어 영양분을 태움으로써 달리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달리기 호흡법이라고 하면 두 번 들이쉬고 두 번 내쉬는 2-2 리듬 또는 2-1 리듬 등 호흡 횟수만 생각할 수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이 '복식호흡'을 하는 것이다. 복식 호흡을 하면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산소를 폐 깊숙한 곳까지 빨아들일 수 있고, 횡격막과 연결되어 있는 장요근도 움직이게 돼서 균형 있게 다리를 올릴 수 있다.


복식 호흡의 장점은 알지만 달릴 때 팔다리를 움직이고, 숨 쉬는 것만도 힘든데 복식 호흡까지 신경 써서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근력 운동을 통해 복근을 키워두면 복식 호흡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가슴 운동으로 어깨와 가슴을 펴서 자세를 꼿꼿하게 만들면 폐 능력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다섯째, 코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


영어로 '코어(core)'라 불리는 몸의 중심부는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모든 동작과 활동의 기본이다. 한 번이라도 허리가 아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걷기, 웃기, 재채기, 물건 들어 올리기, 씻기, 돌아 눕기 등 어떤 동작도 코어의 작용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퍼펙트 러닝>의 저자 장 프랑수아 하비는 근력 운동으로 코어를 튼튼하게 만들면 모든 동작에서 몸의 움직임이 안정감 있어진다고 말한다. 코어가 강해지면 좌우, 앞뒤, 위아래로 몸을 편안하게 통제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다리와 팔도 코어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달리는 것 자체도 코어를 강화에 도움이 되지만, 근력 운동까지 하면 더욱 좋다.






사실 근력 운동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년 전에 개인 PT를 받은 적이 있고, 4년 전에도 임신이 안돼서 체력을 키우려고 그룹 PT를 받은 적이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집에서도 스쾃과 레그 레이즈, 런지 등 가벼운 근력 운동은 간간히 했었다.



하지만 이번 근력 운동은 이전과는 달랐다. '달리기 능력 향상'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달리기로 체력과 끈기를 길러둔 덕분에 훨씬 빠르고 민감하게 근력 운동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호흡, 자세, 팔 치기와 같은 전반적인 달리기 기술이 향상되었다. 하체가 단단해져 달리기 속도가 빨라졌고, 훨씬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달리게 되었다. 특히 근력 운동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 본 경험은 달리다가 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가속 페달이 되어주어 마라톤 완주에 큰 기여를 했다. '잘 달리기 위해서 근력 운동은 필수다!'라는 말에 이제는 격하게 공감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근력 운동 자체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근력 운동은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의 에너지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고비인 마지막 세트에서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걸 매번 경험했다. 강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경험과 온 마음을 모으고 집중하는 것은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근력 운동 후 다음 날 찾아오는 근육통은 싫으면서도 내심 반가운 성장통이었다. 근력 운동을 하며 절대적인 한계를 조금씩 뒤로 밀어본 경험은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한 달 정도 잠깐의 엑스트라쯤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근력 운동은 씬 스릴러가 되어 운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달리기와 근력 운동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앞으로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더 뜨거운 변화의 이야기를 다음에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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