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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Dec 16. 2021

18화_부부 러너를 꿈꿨습니다만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자기야, 얼른 와."

"잠깐만.  닦고."


결혼하고 신혼 때부터 남편과 나는 두 달에 한 번 아버님과 등산을 했다. 아버님은 육사 출신에 수영, 골프, 당구 등 평생 다양한 운동을 즐기셔서 날다람쥐급 등산가셨다. 선두 자리는 늘 아버님 차지였고, 체력은 별로지만 지구력과 끈기는 있었던 내가 두 번째, 건장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부실한 몸을 가진 남편이 세 번째였다. 사실 남편은 체력보다 피부에 난 상처에 들어가는 땀을 닦느라 자꾸 뒤처졌다.



남편을 괴롭힌 피부 상처의 정체는 바로 중증 아토피다. 태어나 백일 때쯤 처음 피부 발진이 일어났는데, 밤에는 가려움증이 더 심해져서 시부모님이 매일 한 시간씩 남편 등을 쓸어줘서 재웠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때는 빨갛고 거칠어진 목과 팔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를 겪었고, 대학교 때는 심각한 전신 염증 때문에 몇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아토피 때문에 군대까지 면제받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짐작이 될 것 같다. 어릴 때 아토피가 있어도 크면서 좋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은 드물게 성인 아토피까지 이어진 안타까운 경우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데 피부는 문제되지 않았다. 아토피 때문에 괴롭고 힘든 시간들이 많았을 텐데도 그는 더없이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일을 마주해도 차분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해결하는 모습에 신뢰가 갔다. 그와 함께 있으면 평화로웠고,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결혼하고 크게 아쉬운 점을 발견했으니, 바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편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데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먼저 살면서 크게 재미를 느낀 운동이 없었고, 치열하게 운동하는 것보다 느긋하게 늘어져 있는 걸 좋아했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면 상처 난 피부에 땀이 들어가 따갑고 가려워서 운동하는 걸 꺼려했다.(샤워를 하고 나면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고 먹는 것만 즐겨한 결과, 남편은 결혼 후 10Kg 넘게 살이 쪘다. 비만은 몸의 염증 수치를 높여서 아토피가 더 심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운동을 하긴 해야겠어." 남편도 몸 상태가 심각하게 느껴지는지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말하곤 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가장 갖기 어려운 것이 바로 '시간'아닌가? 당시 첫째가 12개월이었고, 둘째가 생기길 바라던 시기였다. 새벽이나 퇴근 후에 짧은 시간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운동. 돈을 들여 센터에 등록하지 않아도 옷이랑 운동화만 준비하면 되는 간편한 운동. 살도 빼고, 체력도 키울 수 있는 운동. 내가 너무 좋아해서, 남편과 함께 즐기고 싶은 운동. 그것은 바로 '달리기'였다. 나의 권유와 러너 남동생의 영향으로 남편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끊어질 듯 이어진 남편의 달리기 인생은 총 5기로 눌 수 있다. 1기는 재작년 여름으로 '달리기 적응기'였다. 나의 첫 달리기 풍경 속엔 남편도 있었다. 출발선에 선 우리는 긴장했지만, 런데이 앱 트레이너 가이드에 따라 30분 동안 걷고 달렸다. 속도와 보폭을 맞춰 함께 달리니 즐거웠고, 기대 이상으로 '달리기가 할 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둘째 임신으로 달리기를 멈춘 후에도, 남편은 퇴근 후 근처 대학교 호수공원을 달렸다. 나는 남편이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었고, 주말엔 산책 삼아 호수공원에 가서 남편의 달리기를 응원했다. 남편은 서서히 달리기에 재미를 붙였고, 몸놀림이 가볍고 경쾌해졌다. 하지만 남편은 초겨울 추위와 퇴근 후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리슬쩍 달리기를 멈췄다.  



2기는 작년 여름으로 '달리기 성장기'였다. 둘째 탄생을 계기로 남편은 체중 감량 의지를 불태우며 스스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런데이 어플 '30분 달리기 도전' 1회 차부터 다시 시작했다. 남편은 처음 3주간은 퇴근 후 매일 30분 달리기를 했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한 시간씩 거실에서 혼자 진땀을 흘리며 근력운동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눈에 띄게 외모가 달라져 내 남편이 맞는지 눈을 비비며 확인했고, 그의 의지와 노력에 감탄했었다. 식단 조절까지 함께 덕분에 남편은 일주일에 1Kg 정도씩 살이 빠졌고, 30분 달리기에도 성공해서 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 결과 세 달 만에 13Kg을 뺐다. 하지만 달리면서 종종 무릎 통증을 느껴서(원인은 과체중) 달리기는 멈췄고, 근력 운동은 이어갔다.  



3기는 작년 겨울로 '달리기 심폐소생기'였다. 남편은 목표를 이룬 탓인지 모든 운동에서 손을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바닷가 러닝을 제안했다. 부모님이 부산 해운대구로 이사 가신 터라 10분만 걸으면 해운대 바닷가에 닿을 수 있었다. '바닷가'와 '달리기' 얼마나 설레는 조합인가? 아이들과 함께 겨울 휴가부산에 내려갔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도, 달리기 휴식기였던 나도 새벽 5시 반 알람에 벌떡 일어나 바닷가로 향했다. 아직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있는 해운대와 동백섬을 함께 달리고, 때론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달리기를 마칠 때쯤엔 수평선 넘어 붉은 해가 떠올라 해변이 아름답게 빛났다. 오랜만에 달리는 거라 남편은 힘겨워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표한 시간을 달렸다. 그렇게 짧고 굵게 열흘, 남편은 새벽 달리기를 했다.     



그리고 올봄, 나는 남편에게 또 슬그머니 달리기를 권했다. (나는 지구력이 뛰어난 편이다;;) 4기는 '주말 번갈아 달리기'였다. 온종일 육아를 해야 하는 주말, 나도 달리고 남편의 운동 라이프도 되찾을 겸 기획한 것이었다. 주말 오전 둘째가 곤히 낮잠을 자는 시간에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서, 한 사람은 30분 간 달리고 한 사람은 첫째와 공원에서 놀아줬다. 남편은 걷는 건지 뛰는 건지 페이스 9분-10분 대를 기록했다. 하체 근육이 워낙 좋은 사람이라 "포르셰가 시속 30Km로 달리는 것 같아."라고 웃으며 놀렸지만 마음속으론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면 그걸로 충분해.'라고 생각했다. 남편도 주말에 번갈아 운동할 수 있어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네 번 정도 달리곤 나중엔 흐지부지 되었다.



5기는 단 하루, 4월 초에 '우리만의 부부 마라톤 대회' 개최했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라, 4시간 동안 아기들을 아는 시터 이모님께 맡기고 대회를 열었다. 장소는 올림픽 공원, 목표 거리는 7Km였다. 당시 남편은 4Km, 나는 5Km 정도 달릴 수 있는 실력이어서 우리에겐 7Km도 도전적인 목표였다. 신혼 때 날마다 손잡고 걸었던 올림픽 공원을 달리는 기분은 남달랐다. 그때와 같은 길, 비슷한 풍경이지만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더 성숙해졌고, 달리기를 즐길 만큼 건강해졌다는 게 실감 났다.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고, 힘들 땐 등을 밀어주며 함께 7Km를 완주했다. 수건으로 촉촉이 젖은 땀을 닦고, 완주 기념으로 좋아하는 블랙밀크티를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남편은 그날 무릎 부상을 입고 말았다. 평소보다 먼 거리를 달린 것이 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병원에서 '장경인대염'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간 통증의학과를 다니며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았고, 2주간 다리를 쩔뚝거리며 걸어 다녔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먼저 부부마라톤을 제안한 게 나였기에 어찌나 미안하던지. 남편은 그때 이후 달리기를 끊었다. 부부 러너의 꿈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새벽 5시 40분, 알람이 울린다. 부스럭거리며 누군가 일어나 식탁 위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을 끈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몇 분 후 '띠릿'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닫힌다. 누구일까? 바로 우리 남편이다. 남편은 9월부터 네 달째, 매일 새벽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50분 집중해서 고되게 운동하곤, 다시 집에 와서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지난 2년 간, 내가 권하지 않으면 거자발적으로 운동하지 않았던 남편인데 어떻게 된 걸까?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환경 변화도 누군가의 권유도 없었다. 그저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나, 새벽 운동할래. 운동으로 땀 흘리고 상쾌하게 하루 시작하고 싶어. 몸도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고."



<마녀 체력>의 저자 이영미와 그의 남편처럼 부부가 함께 운동을 즐기는 아름다운 가정도 있지만, 배우자가 운동하기 싫어해서 안타깝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는 가정도 있다. "헬스장 1년 회원권 끊어줬는데, 한 달에 한 번도 안 가. 걷기라도 하라고 저녁에 억지로 내보내.", "운동 삼아 자전거 타겠다고 해서 비싼 자전거 사줬는데, 몇 번 타곤 그대로 세워둬서 속 터져.", "운동 꾸준히 했으면 좋겠는데, PT 딱 10번 받고 코로나 핑계로 운동 그만뒀어요." 지인들의 생생한 하소연이다.



어떻게 하면 배우자가 운동을 좋아하도록 도 수 있을까? 우리 부부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팁을 드리고 싶다. 첫째, 같이 운동한다. 함께 하는 즐거움만큼 매력적인 건 없다. 운동에도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에 그걸 넘을 때까지 다정한 안내자, 운동 동반자가 되어주는 게 좋다. 우리처럼 어린 자녀가 있어 같이 하는 게 어렵다면 번갈아 할 수도 있는데, 이때 같은 종목을 하는 게 경험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해줄 수 있어 좋다. 둘째, 절대적인 운동 시간을 확보해 준다. 요일과 시간을 고정하면 운동 습관을 만들기 좋다. 째,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초보자일수록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운동하는데 칭찬이 도움이 된다. 넷째, 운동 효과 스스로 느끼도록 몸과 마음의 변화를 묻는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운동하니 좋아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째, 운동한 내용을 기록한다. 달력에 운동한 날을 표시하고, 체중이나 몸의 변화를 기록하면 성취를 시각화할 수 있어 동기 부여가 된다. 섯째, 배우자가 힘들고 하기 싫어하면 잠시 멈춰도 괜찮다. 불이 조금 사그라든다고 불씨까지 완전히 꺼지는 건 아니다. 운동의 재미와 가치를 느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날이 온다. 믿고 기다려주자.  



"인준이랑 6개월 뒤에 바디 프로필 찍기로 했어."

"나 골프 시작하려고. 회사 근처 골프장 몇 군데 상담받고 왔어."

"자기도 하프 뛰었는데, 나도 내년엔 10Km 마라톤 뛰어봐야겠다."

남편은 요즘 부쩍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의욕에 불타오르는 남편에게 다정하게  마디 네고 싶다.


"남편님, 일단 다시 볼록하게 나온 뱃살부터 덜어내 마음껏 도전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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