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예지 Mar 08. 2022

30화_내가 꿈꾸는 러닝 크루는...

육아맘도 같이 달리고 싶습니다!   


"함께 달리며 응원할 사람이 생기고 누군가로부터 응원을 받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 찬 그 시간은 지금도 내 달리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아무튼 달리기> 1인분의 운동 중



내가 아기를 낳고 여러 운동 중 달리기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달리기는 동료나 수업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달리면서 내면의 나와 만나는 시간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그런데 이 두 문장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저자는 러닝 크루에 소속되어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눈에 띄게 달리기 실력이 향상되었고, 서울 곳곳의 숨은 매력을 음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기를 키우느라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속감, 격려, 끈끈한 관계 같은 것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러닝 크루'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같은 코스를 달리며 소통하는 모임을 말한다. SNS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서로의 일상과 취미를 공유한다. 부모님 세대의 마라톤 클럽, 마라톤 동호회가 20-30대 사이에서는 러닝 크루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러닝 크루 모집이나 #달리기 동호회 모집을 검색하거나 네이버 카페나 다음 카페, 네이버 밴드에서 달리기 동호회를 검색하면 많은 모임을 찾을 수 있다.




'언젠가 러닝 크루에 참여해 봐야지.'라고 막연히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역시나 혼자 달리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러닝 크루와 딱 마주쳤다. 남녀가 둘씩 짝을 이뤄서 내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옷 차림새부터 달리는 모습까지 감각적이고 활기찬 그들의 모습에 잊고 있던 러닝 크루 가입 욕망이 되살아났다.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네이버에서 '러닝 크루'를 검색하니 종로와 광화문 지역에서 활동하는 러닝 크루를 찾을 수 있었다. 단돈 만 원만 내면 게스트로 참여해볼 수 있고, 모임에 참가하면 달리는 모습도 사진도 찍어준다고 했다. 광화문 달리기 경험에 인생 사진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운영자에게 참여하고 싶다고 인스타그램 DM를 보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러닝 크루에 참가에 실패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세상에 러닝 크루, 달리기 모임은 많지만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곳을 찾긴 어려웠다. 어떤 러닝 크루에서는 나이 제한선을 살짝 넘겨 거절당했고, 자주 가는 달리기 카페의 모임은 대부분 주중에 달려서 참여할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평일 저녁은 시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러닝 크루는 나이 제한도 없고, 주말에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속으로 '야호!'라고 외치며 환호했는데,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신입 회원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맙소사!  




그저 모임에 소속되어 달마다 한 번 정도 함께 달리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육아맘이라는 처지, 20-30대를 갓 넘긴 나이, 코로나19라는 벽이 사정없이 나를 가로막았다. 안 그래도 아기를 키우느라 취미 생활, 먹거리, 여행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데... 속상하고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면 언젠가 내가 러닝 크루를 만들기로!!! 나이, 성별, 지역의 허들을 없앤 러닝 크루. 온라인을 뿌리로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며 운동의 즐거움과 가치를 나누고, 주중이 아닌 주말에 오프 모임을 여는 그런 모임.




특히 '가족 러닝 크루'를 상상해 봤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지만 육아맘과 육아 대디가 아기나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모임말이다. 공원에서 모여 사람들이 각자 달리기 실력에 맞춰 팀을 짠다. 한 팀이 달리는 동안 다른 팀들은 아이들과 뛰어놀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달리고 온 팀이 아이들을 돌보면 다음 팀이 출발한다. 아이들 일어나기 전 새벽에 마음 졸이며 달리지 말고, 유모차 밀며 힘겹게 달리지 말고, 주말 만이라도 달리기 모임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다 같이 축제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또 달리기가 끝나면 함께 밥을 먹으며, 육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로 대화를 나누며 끈끈한 관계로 성장하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가족 러닝 크루'의 모습이다.








온라인 달리기 카페에 '아빠의 달리기 고민' 사연이 올라온 적이 있다.  밤이든 새벽이든 달리고 싶은데 아이들이 자다가 깨서 아빠가 없으면 너무 울어서 달리러 나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언제쯤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을지 사람들에게 묻는 글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응원의 댓글을 남겼다.


"저도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만 5-10Km달려요. 기록 향상은 꿈도 못 꾸고 현상 유지라도 하고 싶어요."

"육아로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달려요. 화이팅입니다!"

" 육아 중에 운동하시는 것도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러너들이 육아를 하면서 운동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글쓴이는 아이들이 더 크면 그 때 마음껏 날개를 펼쳐봐야겠다는 댓글을 남겼는데, 이 말이 희망적이면서도 결국은 매일의 작은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우리 부부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남편도 한창 달리기를 했을 때 둘이 함께 조금 먼거리를 달려보고 싶은데 아이들을 시댁에도 친정에도 맡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는 시터 이모님께 일요일 오전에 4시간 동안 아이들을 맡기고 '부부 마라톤'을 즐긴 적이 있다. 달리기 자체는 너무 좋았고, 아이들도 시터 이모님과 잘 놀아서 각자 따로 시간을 즐겼었다. 하지만 주말이라 시터 이모님과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고, 비용도 꽤 들어서 한 번으로 끝났다. 그래도 함께 달린 시간은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고민에 빠진 러너 아빠 같은 한 때의 우리 부부 같은 그런 사람들을 돕고 싶다. 돕는다기 보다는 함께 육아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느슨한 연대를 맺고 싶다. 주말에도 온종일 육아하느라 지치곤 할 텐데, 운동을 통해 더 건강한 부모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즐겁게 달릴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다. 천천히 달려도 괜찮다. 달리기가 처음이지만 한 번 달려보고 싶다는 사람도 좋다. 그저 아이들 맡기고 부부가 잠깐 같이 손 잡고 조용히 걷고 싶다면 그 역시도 환영한다. '달리기'라는 깃발 아래서 사람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그 시간을 즐기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세상에 외친다.


주말에 아이 데리고
달리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분
요기 요기 다 붙으세요^^!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참여할 수 있는 러닝크루를 꿈꾼다. 아이들끼리도 함께 놀며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1000Km를 달리면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