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내가 정규 교육과정보다 더 시간과 애정을 쏟은 건 사물놀이 동아리였다. 미쳐있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3년 동안 악기 연주에 푹 빠져 지냈다. 1학년 때는 북을 배웠고 2학년 때는 장구를 배워서 꽤 수준급 실력을 갖게 되었는데, 결정적으로 꽹과리를 배우지 않았다. 다른 악기와는 달리 꽹과리를 익히려면 악장 선배에게 일대일로 전수를 받아야 했고, 수많은 시간 혼자 연습하고 익혀나가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악장은 전체 연주를 이끌고, 악기마다 연주법을 익혀서 동기와 후배들을 가르쳐줘야 하는 자리였다.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전체 속에서 한 구성원으로서 합주를 즐기는 것이 마음 편하고 즐거웠다.
학교 현장에 나와보니 꽹과리를 배우지 않은 게 크게 후회되었다. 내가 어느 정도는 꽹과리를 칠 수 있어야 사물놀이반을 꾸릴 수 있었다. 그래야 악기별로 연주법을 가르치고 합주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따로 꽹과리를 배우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 다른 세상도 만나고 싶어서 사물놀이반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3년이나 사물놀이 연주 경험과 재능을 쌓았는데 내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다는 건 아쉽고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나의 팔로워 생활은 이어졌다. 스윙 댄스 동호회, 초등 토론 교육 연구회,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교과 연구 동아리, 각종 글쓰기와 책 읽기 모임 등.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도 기수장까지는 했으나 강사급으로 올라가지 못했고, 토론 모임에서도 지역 모임을 꾸릴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글쓰기 모임에도 꾸준히 참여는 했지만 일꾼은 맡지 못했다. 리더의 자리를 맡기엔 용기가 부족했고, 스스로 실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려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걸.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배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한 나만의 철학과 개성을 장착해야 했다. 그리고 그 분야에 완전히 푹 빠져 전문가 수준으로 내 능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서툴고 부족해도 용기 내서 '깃발'을 들면 나와 함께 성장하고 싶은 누군가를 분명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달리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성장하고 있다. 러닝 앱과 동생의 조언을 받았지만 꾸준히 달릴 수 있었던 건 달리기를 좋아하는 내 '마음'과 '의지'의 힘이었다.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하며 성취감을 쌓았고, 조금씩 거리를 늘리며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달리면서 만나는 풍경,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감정과 갖가지 깨달음을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로 쓰면서 '달리기'와 '달리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 경험도 더 체계화되었고, 달리기와 내 생각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주체적인 경험을 나누고 누군가를 돕는 '리더'가 되기로 결심했다. 혼자 달리면서 무릎 통증, 허리 염좌, 발가락 부상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달리기 싫은 날도 많이 있었다. 겨울엔 혹독한 추위와 맞서면서 달리느라 힘들었고, 지난 1월엔 새벽 달리기 습관을 갖겠다고 도전하다가 일주일 동안 앓아누운 적도 있다. 3월부터는 워킹맘이 되어 확 줄어든 내 시간 중 짬을 내서 달리느라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허들을 넘으면서도 즐겁게 달리는 삶을 이어왔다. 그리고 경험들은 내 몸에 무늬로 켜켜이 새겨졌다. 그저 달리기만 한 게 아니라 달리기 에세이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며 달리기와 몸에 대해 알게 된 점이 많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 꾸준히 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달리는 순간들이 너무 즐겁고, 앞으로도 꾸준히 달리며 성장할 거니까.
나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나만의 철학을 가진 리더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이 든든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달리면서 몸과 마음의 힘을 키우고, 달리기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만끽하도록 돕고 싶다. 다정하고 따뜻한 리더가 되고 싶다.따뜻함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잔잔하게 오래 남는 게 있을까? 나는 그저 달리기 인증만을 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어 안부를 묻고 삶을 응원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임을 꿈꾼다. 꾸준함의 가치를 말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 아주 작은 습관들이 쌓여 삶이 변화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작은 노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꾸준히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 특히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따스한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다.
4년 전에 참여했던 경험 수집 잡화점의 리더 피터님을 떠올려 본다. 그 당시 피터님은 하루 10분 책 읽기, 경제 신문 읽기, 하루 10분 원서 읽기 등 다양한 무료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고, 1-3만 원 대의 소액으로 필사, 글쓰기 모임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나가고 모임을 이끌면서 그 경험과 이야기들이 쌓여 책을 내게 되었고, 4년이 지난 지금은 큰 규모의 자기 계발 모임의 리더로 성장했다. "올해는 10번 실패하는 게 목표예요."라고 말하는 피터님을 보며 도전 의식과 내면의 힘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 또한 피터님처럼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내 테두리를 넓혀가고 싶다. 주체적인 삶을 향해 용기를 내고 싶고, 다양한 모험을 하고 싶다. '이타의 마음'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를 도우면서 나도 성장하고 싶다. 실패하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떤가. 그 안에 내 진심이 담겨 있고, 책임감이 녹아있다면 상대방도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창에서 허덕일 것인가 꽃처럼 피어날 것인가는 언제나 당신 손에 달려 있다. 당신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온전하게 살겠다는 선택을 하자. 그렇게 당신의 여행은 시작된다.
-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이제는 내 의지와 열망의 부름대로 살아가고 싶다. 서툴고 부족해도 주도적으로 살자!나의 미약한 시작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