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부터 학교에 출근하면서 나의 달리기는 시험대에 올랐다. 무려 4년 만의 복직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코로나 시대 바뀐 교육 시스템과 문화를 익혀야 하고, 우리 반 아이들과 호흡도 잘 맞춰야 하고, 워킹맘으로서 내 아이들의 일상도 안정되게 꾸려야 했다. 바뀐 일상에 적응하고 중요한 일들을 챙기다 보면 운동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워킹맘이 되니 내 시간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전업맘일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 달리고 난 후 우아하게 아침을 차렸는데, 이젠 새벽 6시부터 비몽사몽 하며 바로 아침밥 준비에 착수한다. 아침 8시 반쯤 일어났던 우리 아이들도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게 주어졌던 5시간은 오롯이 일하는 8시간으로 바뀌었다. 오후 5시엔 미쳐 마치지 못한 일을 내일로 미루고 후다닥 달려서 아이들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저녁 시간은 질의 변화가 있는데, 아이들이 전보다 3시간이나 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니 안쓰러워서 저녁엔 더 즐겁고, 알차게 놀아주려고 남편과 함께 정성을 쏟고 있다.
하루 중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두 번 주어진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달리거나,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밤 11시쯤 달리거나. 그나마 에너지가 충만한 새벽에 달리는 것을 목표로 3월 한 달을 살았는데, 결심이 무색하게 결과는 대 실패했다. 3월 한 달 동안 첫째 주, 둘째 주는 모두 합쳐서 여섯 번 달렸고, 그 후로 2주 동안은 전혀 달리지 못했다. 일주일은 코로나19에 걸려 집 밖에 나갈 수 없어서 달리지 못하긴 했지만 실내 운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롯이 경험해봐야만 아는 것들이 있다. 워킹맘이 되어보니 운동하기 싫은이유가 빽빽하게 생겨났다. 일단 새벽 일찍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들고, 아침에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8시간 이상 일터에서 에너지를 쏟은 후, 집에 와서 육아까지 하니 밤엔 기진맥진해서 운동할 생각이 1도 안 들었다. 저녁엔 예쁜 나 아이들에게 마음과 시간을 쏟고 싶었다. 그나마 내 시간이 생겨도 학교에서 미처 다 못한 수업 준비와 업무를 위해 꾸역꾸역 책상에 앉아야 했다. "나가서 달리고 올래?" 아이들이 일찍 잠든 날 남편이 권해도 "그냥 쉴래." 라며 사양했다. 그저 쉬고 싶고, 눕고 싶고, 자고 싶었다. 지키지 못할 걸 알면서 달리기를 새벽으로 미뤘고, 결국 새벽에 달리지 못하곤 의지력 약한 내 자신을 탓했다.
'운동 안 해도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네.' 달리기는 규칙적으로 못했지만 워킹맘으로서 잘 해내고 있는 내가 썩 대견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가만히 두면 나빠지게 마련이다. 날이 지나면서 내 몸에 이상 반응들이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했다. 퇴근해서도 내일 해야 할 수업과 일들이 생각나서 정신적인 압박감을 느꼈고, 두통이 생겼다. 하루 4-5시간을 수업하며 끊임없이 말을 하고 29명의 아이들을 다정하게 돌보고 챙기느라 진이 빠졌다. 수업이 끝나면 혼자 책상과 의자를 옮겨가며 교실 청소를 하니 어깨가 결리고 허리가 뻐근했다. 퇴근하곤 쉬지도 못하고 육아까지 내리 달려야 하니 스트레스성 위염이 생겨 약을 먹어야 했고, 뻐근하고 묵직한 통증을 동반한 방광염에 변비까지 생겨서 하루 종일 불편하고 괴로운 몸으로 생활해야 했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한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것뿐이다.
많은 글에서 인용되는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한 구절이다. 아주 작은 이유 하나. 이 글을 수십 번 읽었지만 아주 적은 이유 하나를 뚜렷하게 말하지는 못했는데, 워킹맘이 되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에게 아주 적은 이유 하나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걸. 이제까지 달리기의 즐거움, 개운함, 성장의 기쁨, 성취감, 지구력 향상 이런 것들의 가치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는데, 워킹맘이 되어보니 현실적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소중한 이유 하나 '건강'을 손에 쥐게 되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달리기를 내 삶에 다시 안착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매일 꾸준히 달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잡고 새벽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일어나는 건 어렵지만 일찍 일어나는 만큼 내 시간도 갖고 아이들 돌보는데도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신 하루 10분으로 달리는 시간을 확 줄였다. 옷을 입고, 달리고, 집에 들어와서 씻는 데까지 30분을 넘기지 않아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주말엔 7-10Km 정도 달리며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고 흠뻑 땀 흘리며 달리기를 즐긴다.
10분 달리기는 이렇게 하고 있다. 5분은 천천히 달리면서 찌뿌둥한 몸을 풀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행복하게 채울지 생각한다. 다음 5분은 가볍고 즐거운 움직임으로 생기를 더한다. 마지막에는 가진 힘의 80-90% 정도로 속도를 내서 몸에 땀을 내며 달리기를 마친다. 10분이 짧은 시간이라 부담이 없고, 나른한 몸과 정신을 상쾌하게 깨울 수 있어서 생각보다 만족스럽다.
나는 다른 워킹맘들에 비해 좋은 복지 시스템을 가진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보통 6시에 퇴근하는데 비해 나는 4시 30분으로 퇴근 시간이 빠르다. 그리고 동료들이 육아맘의 어려운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배려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워킹맘으로 한 달 살아보니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는 것은 '강한 의지'를 필요로 했고, 밤에 달리러 나가는 것은 '피곤함'과 '무기력'라는 허들을 넘어야 했다. 또한 단단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습관이 허물어지는 걸 견뎌야 했다. 바뀐 일상에 어울리게 다시 처음부터 습관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궁리하고 시도해야 했다.
나도 이럴진대 운동을 좋아하지 않거나, 나보다 퇴근 시간이 늦은 워킹맘들은 얼마나 운동하는 게 어려울까 싶다.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찾은 것처럼 워킹맘들도 일상에 건강한 움직임을 더하는 '아주 작은 이유' 하나를 꼭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또 나의 '하루 10분 달리기 도전기'가 초보 워킹맘이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워킹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