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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May 17. 2024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2024.5.11 vs. 천안 @수원월드컵경기장


처참했던 어린이날 수중전을 치른 다음 경기도 수중전이 예상됐다. 비 오는 도로를 운전하고 비 오는 비포장도로에 주차를 하고 비 오는 광장을 걸어서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때우고 비 오는 빅버드로 입장했다.


천안은 최하위팀이지만 천안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던, 그러나 여전히 하위권인 성남에게 패배한 기억이 잔상에 남아있다 보니 과연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전반전에는 아주 많은 기회들이 있었고 점유율도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골이 나오지 않았다. 골을 넣지 못한 이상 점유율이나 유효슈팅 등의 통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축구는 그런 스포츠다.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해주지 않는다. 결과 자체가 과정이 된다. 골을 못 넣는 모든 플레이는 승점을 얻을 자격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전에 맞은 천안의 일격은 이 경기를 이기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게 했고 어쩌다가, 그래 이전에 몇 번 어쩌다가 그렇게 해서라도 관중의 아쉬움을 덜어주었던, 극장골로 비기는 상황을 기대하긴 했었다.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상황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다소 한숨 섞인 비난의 기다림이었다. 종료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 기다림은 초조함이 되고 간절함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채워주지 못한 경기였다. 0:1 패.


최하위권 두 팀과의 경기에서 승점 1점도 따내지 못했다. 어느덧 리그 4패째를 기록했고 1위 안양은 매경기마다 승점을 보태면서 수원과의 거리를 점점 벌리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1위에게만 주어지는 다이렉트 승격의 기회는 안양에게 돌아갈 것이다. 2위라도 해서 플레이오프를 통한 승격의 길이 남아있지만 현재의 경기력이라면 어느 다른 팀의 희망을 실현시켜 주는 희생양으로만 쓰일 것 같다.


후반에도 너무나 많은 기회와 아까운 순간들이 있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말하더라도 확실히 골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이었다. 한 골 정도는 들어가고도 남을 일반적인 운의 분포였지만 하늘이 강하게 거부권을 행사하듯 단 하나의 운도 할당받지 못했다. 운도 실력이라고 했던가. 운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 실력일 테다. 운 같은 걸 따지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플레이는 실력에서 오는 것이다.


기훈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말 감독이 문제일까. 일대일 상황에서 골을 넣지 못하는 것에도 감독의 귀책이 있을까. 그러면 선수들 모두의 문제인가. 개개인의 역량으로는 선수단 전체의 문제로 볼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운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팀 자체가 가진 신비적인 열등성. 롯데나 한화의 야구에서 보여지는 매우 포괄적인 운의 지형이 수원에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장 합리적 설명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내일 또 직관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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