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나는 온습도의 환경에서 삐질삐질 줄줄 땀을 흘리며 그 갑갑함을 답답하게 참아내야 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런 계절을 좋아한다. 현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찼기에 내가 견딜 수 있는 대상 곁에 머물고 싶어 경기장을 찾는다.
수원 월드컵경기장(빅버드)을 올해 남은 기간에는 사용할 수가 없어 이번 경기부터는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수원의 홈경기가 열린다. 마땅한 대중교통편이 없어 차를 가지고 4시간 전에 도착했다. 다행히 주차할 자리는 있었다. 경기장 지하에 카페와 식당이 하나씩 뿐이었지만 제법 규모가 큰 편이라 불편함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경기장이 무지 크다. 피치와 관중석 사이에 트랙이 있어서 더 넓게 보인다. 정확하게는 멀게 보인다. 그래서 경기를 관전하는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상대팀은 올시즌 1부 승격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2부의 원탑 안양 FC다. 수원이 지더라도 할 말은 없을 텐데 새로운 경기장의 첫 경기가 패배로 시작한다면 그것 또한 불길한 징조로 작용할 것 같으니 반드시 이겨야 한다.
출전 선수 명단을 보니 아는 이름과 모르는 이름이 반반이었다. 젊은 선수들과 영입된 선수들의 얼굴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변성환 감독의 선수 선발 능력을 믿기에 팀이 잘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경기는 7시 30분 시작인데 8시에 아이유 콘서트 티켓팅을 해야 했다. 그 시간에 신경 쓰느라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분산되었다. 티켓팅에 접속하니 대기자가 5만 명이 넘어서 내 신경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다가 수원의 선제골이 터졌다. 올해 영입한 김지호의 왼발 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체구가 작아서 처음에는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는데 경기에 나올 때마다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는 탈압박을 풀어내는 과정이 대체로 좋았다. 여유를 부리다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이전보다는 속도감이 있고 패스도 정확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스피드 있는 멤버들의 활약 덕분에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거침없었다.
좋은 흐름은 후반에도 이어졌고 수원의 애매한 인물, 뮬리치가 시원하게 오른발 슈팅을 골문 구석에 꽂았다. 퇴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한 골을 넣어서 판단을 거듭 유보하게 만드는 선수다. 순간적인 골 결정력이 그냥 내보내기엔 아까운 존재이긴 하다. 그저 계속 잘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경기는 2:1 수원의 승리로 끝났다. 선수들은 새로운 구장에서의 첫 승을 만끽했고 우리의 변성환 감독은 코치, 벤치선수, 교체선수, 뛴 선수, 쥐 난 선수, 야유받는 선수, 선심, 주심, 상대팀 감독, 선수들 다 돌아다니면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이러니 변버지라고 부르지.
낯선 곳에서의 첫 경기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 정신이 분산된 나도 승리의 분위기에는 온전히 빠져들 수 있었고 구하지 못할 것 같았던 아이유 콘서트 티켓도 구했다. 내가 가장 기다리고 사랑하는 계절인 여름이 지나가도 오렌지 태양 아래 펼쳐질 9월의 콘서트를 기대하며 여름의 끝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