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이유 - 4

취향이 있습니다만

by 소설

“대학때 생각도 나고 좋네. 친구들 만나니까”

“민호 너는 결혼할려고 대기업 기를 쓰고 들어간거 아냐? 몸값을 높혀야 결혼이 되겠다더니 왜 아직 안하고 있냐 임마?”

“사람이 있어야 하지. 혼자 하냐? 그러는 너는? 그때 회사에 만나던 여자랑은 잘 되어가?”

“아, 민경씨? 재밌다고 호호거릴땐 언제고 내가 진중하지가 않다나 뭐라나. 맨날 무슨 놈의 대화를 좀 하자더니 각자 시간을 가져보고 싶단다."

“우리랑 야구보러 온거 알면 싫어하는거 아냐?”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보고 싶으면 보는거지. 지는 지 읽고 싶은 책 읽는 거고."

"언제는 지적이어서 좋다며?"

"지적이긴 하지. 근데 책에 나오는 캐릭터는 다 이해하는데 진짜 사람이랑은 대화가 안되는 사람 알아? 그런 사람이더라고. 전에는 노인과 바다에 산티아고 노인이 뉴욕 양키즈의 조 디마지오 선수를 좋아해서 묘사하는 장면이 있어서 야구가 궁금하대."

"헤밍웨이?"

"그래, 내가 그 지루한 노인의 바다를 다 읽고 야구를 보러 갔잖냐"

"그 여자가 읽으라고 해서?"

"아니! 제목만 알지 못 읽어봤다고 하기 창피해서 그걸 또 밤새 읽었다. 별 내용도 없더만. 근데 야구보러 같이 다녀서 너무 좋다고 하더니 좀 지나고 나니까 나때문에 본거였대. 그런 유치한 게임에 흥분하고 신나하는게 이해가 안된대."

"요즘은 오히려 여자 야구팬이 더 많다던데. 야구 룰이 어렵나?"

"내가 보통 친절하게 설명을 했겠냐. 분명히 같이 가자고 할땐 오케이하고 야구장 가서도 신나했거든. 근데 뒤늦게 나를 무슨 게임좋아하는 초딩 취급하면서 사람을 막 무시하는데 참나. 말을 안해주는데 내가 무슨 수로 아냐고”

"그러게 한국 야구 팬 천만관중을 돌파했는데 다 초딩이라 할 수는 없는 숫자지."

“암튼. 맨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나중에는 그때 서운했다고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진짜.”

“생각이 많은가 보네”

“야단맞을 각오만 해야한다니까. 그 낚시하는 노친네도 이해하면서 왜 나는 이해를 못해주냐고"

"ㅋㅋㅋ 어렵네"

민호는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어쩌면 본인과 더 대화가 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노인이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매일 허탕만 치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현실이 비루하기 때문에 그 하루를 떠나서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제자 신문의 야구 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노인은 그날의 낚시가 고되고 실망스럽더라도 바다너머의 게임결과로 현실문제를 초월하고 관조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하루하루는 매일 지는 루저로 살지만 승패가 뚜렷한 게임의 결과를 기다리며 야구게임과 맥주한캔이 있으면 그 저녁은 그럭저럭 봐 줄만 하게 된다. 게다가 노인처럼 빈손의 85일을 버티어 내면 대어를 낚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맥주 마실거지?"

"당연하지, 나초랑 먹자"

"치킨은?"

"금요일이니까 끝나고 맛있는데 가서 한잔 더 하자."

"오, 좋았어"

야구경기가 끝나고 준서의 페라리를 타고 간 곳은 어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라는 P.F.CHANG이었다. 민호 혼자라면 가 볼 엄두가 나지않게 인테리어가 어딘지 고압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여기 좋아하셨거든. 아버지 미국 출장에서 먹어보고는 우리 가족 데리고 오시는거지, 오렌지치킨 먹으면서 신나게 아버지가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해주면 온가족이 좋아했어."

"나 여기 몽골리안 비프 좋아해, 엄마는 사천식 가지요리 꼭 시키고. 가지를 왜 돈주고 사먹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메뉴 고르는데 이상한 규칙이 있어서. 수빈이 매운거 좋아하니까 쿵파오 치킨 어때? 완탕수프 시켜서 나눠먹을까?"

"나 매운거 땡기는 줄 어찌 알았지? 좋아. 민호는 뭐 머 맘에 드는거 없어?"

"난 아무거나 괜츈. 니네 먹고 싶은 거 시켜. 난 술을 고르련다. 와인도 있고 레드와인? 아니다. 연태구냥 있구나, 연태구냥 마시자 오늘은."

"좋아. 금요일밤은 이거지이~~~건배하자!"


우리는 더이상 꿈꿀 나이가 지나버려 야구를 보고 술을 마신다.

꿈이나 호기심 따위로 들떠서 시간을 보낸지가 언제란 말이냐. 말짱한 제정신으로 버티기에도 하루하루가 힘든 세상이다. 알콜의 기나긴 역사와 그안에 담긴 기다림과 대담성을 무시하지 마라.

마시자. 오늘밤정도는 좀 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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