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아침을 먹고 난 시간에 카톡이 울렸다.
미국에 살다, 지금은 귀국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아가다 자매였다.
"로즈마리 한국 나왔어?"
"어떻게 알았어?"
"카톡 사진 보고 알았지? 얼굴 한 번 보자."
그렇게 아가다 지매와의 약속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또 다른 자매님이 한국에 나와있다 , 일주일도 못 채우고 급작스럽게 다시 돌아가는데 같이 배웅을 하자고 해서 인천공항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을 한국에서 만나면 반가움은 배가 된다.
갑작스러운 약속에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둘 중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서야 멀리서 뛰어오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평상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그녀가 길을 헤매다가 시간이 늦어졌단다.
"집이 어딘데 이렇게 늦게 와?"
"미안, 나 목동에 살쟎어."
"목동?"
"어."
"목동 어디?"
" 목동 13단지."
"목동 13단지면 양천구청 지하철역 바로 앞 아니야?"
"맞아, 나 거기 살아."
"그럼, 성당도 양천성당 다니겠네?"
그녀는 모태신앙을 가진 천주교 신자였다.
"그럼 나 사람 하나 찾아주라.."
미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 잃은 철새들 마냥 미래의 불투명한 암흑 같은 시기를 함께 보낸 여고동창생이다.
너무 이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야 할 정도의 미모였다. 거의 청춘의 시기를 거의 붙어다니다 싶이 했으니, 서로의 가정사까지도 꽤고 있는 사이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고된 미국살이 중 문득문득 친구들이 생각났지만, 연락이 되는 친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결혼식에도, 세 아이 엄마가 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우리 무리들 중 아무도 그녀에 대한 소식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죽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친구로부터 들은 소식은 두 아이와 함께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그녀를 찾는데 결정적인 단서는 친구의 아버지의 성함이었다. 유명 재벌 회장과 성함이 같은 걸 기억해 냈다.
나는 참 사소한 기억력이 쓸데없이 좋은 편이다.
"우리 아버지 이름은 기억하기 쉬워."
"누구랑 이름이 같아."
목동 집을 놀러 갈 때 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같은 천주교 신자였다.
만약 부모님들이 아직도 살아계셔서 성당을 계속 다닌다면 집 주변일 확률이 높았다. 성당은 구역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부산에 가고 없는 사이 아가다 자매한테서 전화가 와 있었다.
'로즈메리! 찾았어. 너 친구."
'정말?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너무 쉽게 찾아지다니!
그날 가자마자 성당사무실에 들러 친구 아버지 성함을 가진 신자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해 놓았단다.
처음엔 개인정보라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단다.
그러다 미국 사는 딸 친구가 오랜만에 들어와서 한국에 나와 전부터 찾고 있다고 하니 , 바로 친구의 부모님 연락처를 주었다고 한다. 그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니, 나의 이름을 듣자마자 너무 반가워하셨단다..
그렇게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 기다림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떨렸다. 살아있었구나.
건너편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친구였다. 모든 걸 해탈한듯한 평온한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은신아!!"
"미진아!!"
평소에 허스키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져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평상시 보다 훨씬 흥분한 상태로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신기했다. 사람의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어서 빨리 보자!"
더 이상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진선아! 찾았어."
"뭐라고? 정말?"
또 다른 친구인 진선이 역시 놀라며,
스케줄을 맞춰 빠른 시일 내에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경기도 외곽에 살고 있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진선이와 강남역에서 만났다. 서로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어릴 때 친구를 만나는 기대감에 둘 다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미 사진으로 본 미진이는 옛 모습 그대로 인형이었다.
아들이 벌써 서른네 살의 장성한 청년의 엄마가 이뻐도 너무 이뻤다. 친구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한 친구이기도 했다.
드디어 만났다. 어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는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 밥 먹자!"
"너희들 온다고 밥상을 차려놓았어."
미리 재워놓은 갈비를 숯불에 구워 25년 만에 같이 밥상 앞에 앉았다.
변해도 괞찮았다. 살아있어만 주어도 고마웠다.
지금 이 순간 같이 있어줘서!
친구야!!! 너무너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