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목적지인 티후아나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어서, 아들과 나는 일본항공을 이용해서 멕시코시티까지 가야 했다. 그곳에서 엘에이에서 출발한 남편과 만나기로 했다. 신 이산가족 상봉이다. 그러고 나서 그곳에서 국내선을 타고 티후아나로 들어갈 예정이었다.그땐 몰랐다. 이 여정이 나의 고단한 인생으로 가는 통로였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다.
한 치 앞의 인생을 예견할 수 있는 전지적인 능력이 있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없어졌을 테지만. 나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살 수밖에...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내려 공항 입국심사대를 찾아가다 보니 남편은 아직 도착 전인가 보이질 않았다. 원래 대로라면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려야 하는데 보이질 않으니 낯선 곳이라서 그런가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9개월짜리 갓난쟁이를 등에 업고 ,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아이를 뱃속에 넣고 18시간을 날아온 와이프를 , 겨우 5시간 걸리는 곳에서도 먼저 와 있지 않고 아내와 애를 기다리게 하는 남편이라니..... 왠지 모를 불안감과 믿음직스럽지 못한 생각이 교차한다.
공항 입국심사대를 찾으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 보니 반대편에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길게 늘어선 공항 검색대에 가서 줄을 서고 있으니 반대편에서 남편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여기 있다고 불러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는 줄이라서 부를 수가 없었다. 무심한 건지 무관심인 건지....
그 큰 공항 안에서 내가 의지 할 데라고는 저 남자 한 사람뿐인데, 결국은 긴 줄을 겨우 돌아 아는 척을 하는 이 남자가 내 남편이란다.
내 화려한 연애사가 무색하게 마지막 종착점인 이 남자는 참 무심하다.
애를 둘이나 가지고 사는데도 부부는 서로 어색하게 마주 본다.
아들을 나에게서 받아 올리고 나서 오느라고 수고했다는 소리 한마디 없다.
공항 심사대는 끝이 없다. 피곤이 몰려 올 무렵 공항 직원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자기를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무엇이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긴장한 채로 그 직원을 따라나선다. 우리가 간 곳은 줄이 거의 없는 한가한 또 다른 라인이었는데 알고 보니 노약자를 먼저 보내주는 배려였다.
오!! 나쁘지 않은데...
그 나라의 첫 이미지는 공항으로부터 나오는 경향도 있어서 기분 좋은 느낌으로 출발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느낌은 항상 들어맞지 않는다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일단 출발은 산뜻했다.
나의 인생은 항상 그랬다. 남들보다는 조금 더 희한하게, 남들보다는 좀 더 고통스럽게... 기구한 팔자는 아니었지만 남들이 보면 기이한 팔자라고 여길 정도라 내가 느끼는 고통과, 남이 나의 팔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다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감내하지 못할 만큼의 인생은 아닌 참 모호한 인생들을 살아냈다. 누군가 에게는 로망인 삶처럼 보이는 삶이 막상 살아보라고 하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그 모호함 말이다. 아마 지금 내 앞에 펼쳐질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또 살아내야 하는 나의 인생을 감내해 내야 할 힘이 생겼다. 바로 내 아이들이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 감내해야 할 인생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내 아이들을 위해 감내해야 할 시간들이다.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돌덩이를 하나 더 가슴에 안고 이제껏 보다 더 힘겹게 마주해야 할 나의 시간들이다.
남편은 바로 5시간이나 더 걸리는 티후아나로 들어가기는 힘들고 무리니 하루를 쉬고 나서 다음날 가자고 한다.
공항을 나와 도시로 빠져나와 시장기를 느낀 우리는 남편이 예약해 놓은 곳으로 찾아간다.
낯선 곳에서의 가족과의 해후... 비로소 부부는 서로를 볼 여유가 생긴다. 애틋함은 없다.
짐을 풀고 나서 시장기를 느낀 우리는 호텔 로비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텔의 식당은 이미 문을 닫으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테이블에 몇 테이블에만 간간히 손님들이 있었다.
가까스로 자리에 앉은 우리는 저녁으로 뭘 시킬지 몰라 가장 간단하고 익숙한 스파게티를 시켰다.
주문을 한 지 시간이 꽤 걸려서 나온 스파게티는 면은 삶아지지 않아서 뚝뚝 끊기고, 소스는 케첩만 들이부었는지 케첩 맛만 나는 평범하다 못해, 배가 고파도 꾸역꾸역 넣어지지도 않는 최악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