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이 아닌 둘레길을 가야 하는 이유

인생은 지름길만 있는 건 아니다.

by kseniya

다음날 아침 , 공항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멕시코 시티의 외곽도시를 보여주고 있었다.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정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는 아즈텍 문명의 거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멕시코의 수도이지만,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그 멋진 문화유산을 눈으로 보진 못했다. 도시의 외곽지역은 화려하지도 않았고, 멕시코 고원에 위치한 도시답게 언덕 위의 위치한 집들이 드문 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언덕 위의 집들은 서민들의 삶을 말해주는 듯 위태위태해 보였다.


공항을 들어서서 우리는 멕시카나 항공을 이용해서 우리가 가야 할 또 다른 멕시코의 반대 도시인 띠후아나로 가야 했다.

유타칸 반도에 가까운 멕시코 시티와 미국의 서부 도시 샌디에이고와 접경도시에 위치한 띠후아나와는 비행시간만 5시간이 걸렸다. 멕시코라는 나라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어마한 땅 크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아마 텍사스주를 미국에 빼앗기지만 않았다면 미국을 능가했을 텐데 그들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했을까.

넓은 땅에 천연자원과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경관의 바다를 가진 복 받은 나라였다.


멕시카나 항공은 비행을 터프하게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비행기의 날개는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이 너덜너덜 바람에 흩날린다. 비행 승무원들은 가녀리고 친절한 우리나라 승무원들과는 달리, 물 한 잔 요구하기도 겁날 정도로 체격들도 좋은 승무원들이었다. 다들 바지를 입고 있었고 나이도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이었다.

참 나라마다 문화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 착륙도 참 터프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사히 도착했다.

지금 내리는 이 도시가 우리 가족이 앞으로 머물러야 할 곳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내 아이들이 머물 곳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 도시에서 내 삶은 또 지속될 것이다.


공항에서 나와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이었다. 이 집은 일반 가정집을 하숙집으로 개조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한국의 대기업을 비롯해 그들의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한인사회의 초라한 그들만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장기체류를 하는 주재원들이나 한국 본사에서 출장 온 사람들이 주로 이 하숙집을 이용하거나 한국음식을 주문해서 먹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하숙집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곳엔 파라과이에서 온 두 형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큰아들의 아내인 사람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녀에겐 이미 큰 딸이 있었고, 언니를 하나도 닮지 않은 공주라는 겨우 3살짜리 늦둥이 딸도 있었다.

이 곳의 운영자는 실질적으로 시동생이였다. 다음 카페를 통해서 멕시코에 관련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하숙집도 홍보하고 있었다. 나 또한 이 카페를 이용하였다. 이 곳으로 오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 한국에서 컨택을 하고 나서 , 그 정보를 토대로 시댁 식구들이 움직인 것이다.

이 곳을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둘러보고 한 달 동안 장기투숙을 예약해 놓고 간 곳이었다.

엘에이에서 차를 이용해도 불과 2시간 반 밖에 안 걸리는 이 곳을 왜 우리는 둘러 둘러서 와야 했을까?



남편은 미국에서 그 당시 20년 넘게 살아온 재미교포였다. 귀신에 씌인듯 번갯불에 콩 볶듯이 결혼을 하고 남편은 다시 자신의 터전인 엘에이로 돌아갔지만, 비자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나는 계속 한국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결혼과 동시에 생긴 애를 낳고 친정에서 머무르는 동안 비자는 도통 해결이 되지 않았다.

모든 시댁 식구 들이 미국에 살고 있었지만 , 시아버지만이 한국의 고향에 혼자 살고 계셨다. 도저히 미국에 적응을 할 수 없어서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내가 미국에 살아보니 아버님의 마음이 천번 만번 이해가 되고도 남을 지경이다.


아무래도 비자 문제가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미국에 계신 시어머니가 당신 자신들이 떨어져 지내서 그런 건지, 부부는 떨어져 지내면 좋지 않으니 비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만 가까이 있는 곳으로 내가 오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가족이 합치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엘에이와 가까운 국경도시인 이 곳 띠후아나로 옮겨 오기로 한 것이었다. 결정이 내려지고 난 후 미국에 살고 있는 시댁 식구들은 사전에 이 곳을 둘러보고 어느 정도 안전한지 확인을 하고 나를 불러들인 것이다.



하숙집의 2층에 위치한 방을 안내받아 짐을 들여놓고, 긴 비행으로 쌓인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밤은 피곤함에 묻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다.


남편은 하숙집에서 3일을 머문 뒤 다시 엘에이로 돌아갔다.

남편이 돌아가고 나니 낯선 곳이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마음은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해 천지사방을 기어다니는 아들과 함께 이 좁은 방한칸의 공간에서 한 달 동안 지내야 한다.

남편이 다시 돌아오는 주말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