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잘 보지 않은데, 집에서 빈둥대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요즘은 간간이 TV 시청을 한다. 주로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채널을 돌리다 <EBS세계테마기행>, <EBS신계숙의 맛더사이클 다이어리>, <KBS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방송되면 멈춘다. <KBS배틀트립>도 자주 봤는데, 요즘은 안 하는 것 같다. TV와 넷플릭스를 넘나들며 <꽃보다 할배> 시리즈, <윤식당>도 즐겨 봤고, 요즘은 넷플릭스로 <노는 언니>에 빠져 있다. 아무래도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극에 달한 게 아닌가 싶다.
▲즐겨보는 컨텐츠
책도 여행 관련 책을 즐겨 본다. 여행서적은 텍스트로든 사진으로든 과거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해 좋다. 가볍게 쭉쭉 읽혀 내려가는 것도 좋다.
▲최근에 본 책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며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유시민은 <유럽도시기행>에서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고 했다. 그는 “도시는 대형서점과 비슷하다. 무작정 들어가도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책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걸리고 몸도 힘들다. 대형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즐거움을 맛보려면 서점의 구조를 미리 파악하고, 어떤 분야의 책을 살펴볼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낯선 유럽의 도시를 여행했다. 찍어둔 곳은 빠뜨리지 않았고 몰랐던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렸다”고 밝혔다.
나에게 ‘여행은 먹고, 걷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먹는 거에는 시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진심인 편이다. 그리고 무엇을 먹는가 보다는 언제나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에 식어버린 커피라도 그리 행복할 수가 없고, 불편한 사람과는 산해진미를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체질이다.
구글맵을 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두발로 걸어 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패키지여행은 엄마를 모시고 갔던 이스라엘 로마 성지순례가 유일하다. 다른 모든 여행은 현지 대중교통과 도보로 다니는 자유여행이었다. 그래야 현지의 낯선 풍경과 공기를 더 생생하게 몸과 마음에 담을 수 있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우연찮게 낯선 외국인과 재미있는 해프닝이 벌어질 때도 있고, 그런 추억들은 훨씬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여행은 곧 사랑이다. 몇 박 며칠 동안 호텔방을 함께 쓰고, 24시간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먹으면서 온전히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동행한 가족(또는 친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 물론 사소한 일로 왈왈거리며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다. 곧 풀어지고, 웃고, 떠들며, 재미있는 경험들을 나눠 갖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울고불고 싸운 것마저 소중한 추억이 된다.
여행지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생긴다. 로마를 다녀오고 나서, 로마가 너무 좋고 멋있어서, 로마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넷플릭스에서 <로마제국>, <트로이>, <로마위드러브> 등을 찾아보다가, 더 나아가 <스파르타쿠스>, <오스만제국의 꿈>, <더킹 헨리5세>,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 <더 크라운>, <킹스 스피치>까지 줄줄이 이어 보게 됐다. 그러면서 차기 여행지 리스트에 이태리 전역은 물론 스페인, 터키, 영국까지 추가했다.
▲구글맵에 여행했던 곳을 표시해놓고 이따금 추억을 소환하길 즐긴다.
연초에 퇴직을 하면서 한 6개월간은 수년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올레길 420km를 완주하고, 두어 달 정도 쉬었다가, 스페인 산티아고 800km 순례길 걷기를 쉬엄쉬엄 하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그래도 놀러 다닐 사람은 다 다니더라. 나도 가지 뭐’하며 제주도 단기월세를 알아보는데, 이런 계획을 들은 사람마다 하나같이 “여자 혼자 올레길은 위험하다. 은근히 인적 없는 야산 코스가 많다. 몇 년 전에는 살인사건도 있었다”라며 말리는 것이다. 겁이 많은 나는 “살인사건”이란 말에 심장이 쪼그라들어 모든 계획을 때려치웠다.
그렇게 야심 찬 계획을 뒤로하고 어영부영 집 앞 산책로나 걸으며 계절이 바뀌는 걸 느끼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마지막 여행이 작년 11월 대만 가오슝이었으니, 꼬박 1년여를 그야말로 집콕(집에 콕 처박혀)하며 지냈다. 좀이 쑤실 만도 하다. 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먹고 걷고 사랑했던 여행의 추억이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무라카미 하루키_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_문학동네 20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