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유일한 공매도 세력은... 남(의)편

by 김연수

그날, 나는 학원 앞에 세워진 배너를 보고 결심했다


축! ○○수학경시대회

대상 ○○초등학교 3학년 ○○○


새로 이사한 동네, 우연히 지나가던 학원 앞. 입구 앞 배너를 본 순간, 직감했다.
'이거다. 이 집 아들 공부 잘한다더니, 진짜 잘하나 보네. 우리 애들도 여기 보내야겠다.'


초등학교는 시험도 없어서 내 아이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 애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학원 다니면서 수상이라도 하면 저렇게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해주니 이 학원은 꼭 보내고 싶어졌다.

'좋았어, 이거야!'


해당 사진은 본 포스팅 내용과 무관합니다.


정작 내 아이가 수학을 좋아하는지, 준비가 됐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내가 보내면 가는 거지, 뭐가 문제야?'


학원 선택 기준도 딱 하나였다.
'남들이 하니까.'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고, 늦게 시작하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내 지갑을 열었다. 그렇게 학원 앞 배너 하나가 내 육아의 나침반이 되어버렸다.


집에 와서 나는 흥분해서 떠들었다.
"자기야, 사고력 수학은 교과 수학이랑 달라. 그냥 연산만 하면 안 된대. 자기가 몰라서 그렇지, 요즘 애들 다 하고 있어."

어떤 논리도, 근거도 없었다. 그저 "요즘 애들 다 해"라는 주문을 외울 뿐.


그때 남편이 던진 한마디.
"나는 중학교 때까지 축구공만 차다가 고등학교 때 공부 시작했어."


그렇다. 남편은 내 인생의 공매도 세력(반대세력)이었다.
내가 뭔가에 올인하려 하면 늘 하락에 베팅하는 사람.


사실 우리 부부는 논리적이지 못하기로는 똑같았다.


나는 "요즘 애들 다 해"를 외쳤고,

남편은 "내 때는 안 했어"를 반복했다.


나는 남편이 요즘 세상을 모른다고 답답해했고,

남편은 내가 또 쓸데없는 정보에 휘둘린다고 한숨 쉬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안다.


학원 앞 배너를 보고 결정하는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남들도 하니까’가 얼마나 비싼 수업료였는지.


그때는 공매도 세력이 야속했지만,
지금은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

(진심이다)


만약 그때 남편이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더 많이, 더 빨리만을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원금만 잃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기회비용까지 놓치고 있었을 투자였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남편의 공매도 덕분에 나는 배웠다.
묻지 마 투자 대신 가치투자를,
남의 배너가 아닌 내 아이를 보는 법을,
불안이 아닌 신뢰로 기다리는 법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을 이겨먹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그래프는
조용하지만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그날의 투자 교훈
최고의 투자는 - 때로는 '투자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