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만 다녀오면 심통이 났다

거리 두기가 만든 복리효과

by 김연수



시누가 아이를 낳고 시댁으로 합가 했다. 조카는 우리 아들과 여섯 달 차이였다.


어머님과 내가 마주 앉아 나는 젖을 물리고, 어머님은 분유를 먹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뭔가 불편했다. 어머님이 외손주 키우는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거슬렸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신 건데도.


나는 세 아이를 허덕이며 키우는데, 시댁에 가면 모든 게 외손주 하나에 맞춰져 있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아빠, 이모님까지. 어른 다섯이 아이 하나를 왕자님처럼 키우는 환경. 거기에 시어머니는 본인이 얼마나 외손주를 정성껏, 열심히 키우는지 수다를 늘어놓으셨다.


시댁만 다녀오면 심통이 났다.

샘이 났던 것 같다.




신혼 때, 어머님은 넘치도록 잘해주셨다. 시댁 바로 뒷집에 사는 외며느리를 위해 냉장고엔 반찬을 채워주시고, 속옷 서랍까지 정리해주시곤 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을 그때쯤 알게 됐다




어느 날 밤, 남편이 말했다.

"우리 용인으로 이사 가자!"

(용인은 남편 직장이 있는 곳이다)

"애들 학군은 생각 안 해?"

"잘할 애는 어딜 가서도 잘해."


남편은 아무리 부모라도 가까이에서 살면서 오히려 불편하다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불효자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원가족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나는 남편을 이겨먹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 이중적인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호기롭게 용인으로 이사하고, 막상 세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출근하려니 보통일이 아니다. 급할 때 연락드릴 수 있는 어른이 용인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막막했다.


우리는 애가 하나도 아니고 셋이었고, 막내는 7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꽤 괜찮은 '팀'이었다.

밥 먹다 아이가 힘을 주는 기미라도 보이면,

서로 “먼저 먹어”라며 일어나는 부부.

‘네일 내일’이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팀이 되어갔다.


부부로서 느끼는 측은지심과 고마움, 그때의 동지애가 투철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용인으로 이사했던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우선 경제적으로 계산이 가능한 것부터 생각해 보자. 조선족 상주 이모님 대신, 시간제로 오후에 몇 시간만 와주시는 이모님을 모셨다. 월 300만 원이 100만 원이 되었다. 1년이면 2400만 원, 4년이면 1억이다.


직장 가까이 살면서 아낀 기름값과 통행료, 왕복 시간. 퇴근하고 10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 아낀 체력을 아이들에게 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신의 한 수’는 따로 있었다


어른은 두 명.

아이는 세 명.

시간제로 출퇴근하시는 이모님.

아이들에게 일일이 어른의 손길이 닿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웬만한 일은



척척 잘하는 아이들로 자랐다.


자기 주도적인 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유치원생일 때는 유치원생으로서 할 일을 할 줄 알면 되는 거였다. 초등학생일 때는 초등학생으로서 할 일을 스스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부모가 대신하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라고 믿는 건

오히려 아이 인생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교육학적 학문으로 알았다면

15년이 지난 지금은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주도적인 학습습관은
주도적인 생활습관에서 시작된다.


경제적으로 계산하면 수억의 절약이었지만, 더 큰 수확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조금은 불편해도 견뎌내고,

조금은 부족한 듯 키웠던 그 시간들 덕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비용과 성장 비용을 얻었을까?


이때부터 나는

우리의 물질적 살림살이와 정서적 자산이

복리로 불어나는 것을 느꼈다.


결혼을 했다면, 부모로부터도 한 번은 완전한 독립을 해야 한다.


독립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부의 힘으로만 원가족을 꾸려보는 경험.

그것이 우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정말 큰 자산이 되었다.


이제 부모님이 연로해지셨다.

우린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로 건강할 때는 적당히 떨어져 살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까이에서 도리를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찾은 답이다.


그날의 투자 교훈
적당한 거리 두기가 만든 복리효과 - 독립할 때 독립하고, 돌아갈 때 돌아가는 것도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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