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보는 색
몇 달 전, 토네이도가 딸이 사는 도시를 휩쓸었다.
딸의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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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는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친구가 빌려준 차와 회사 동료들의 카풀 같은 따뜻한 배려 덕에 딸은 감사한 마음으로 몇 달을 버텨냈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3개월을 보내고 얼마 전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뒤, 딸이 새 차를 사러 집에 왔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우리 집 강아지 빼꼼이를 돌봐준 딸은, 빼꼼이를 데려다주면서 차도 사러 온 것이었다.
우리 셋은 설렘을 안고 자동차 딜러십으로 향했다.
딸은 우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원하는 차종을 이미 정해 두었지만,
막상 색 앞에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색을 고르는 순간만큼은 놀랍도록 진지했다.
하얀색은 너무 평범했고, 검은색은 묵직했다.
남편은 하얀색을 추천했지만,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흔해. 좀 더 독특한 색이 좋겠어."
딜러십을 돌다 Urban Gray 앞에 멈췄다.
햇빛 아래에서는 은빛처럼 세련되게 빛나고, 흐린 하늘 아래에서는 고요한 잿빛으로 변하는 묘한 색.
"이거야."
우리 셋의 마음이 동시에 끌렸다. 그리고 바로 결정하고 샀다.
새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오는 길, Urban Gray 차들이 사방에서 눈에 띄었다.
옆 차선, 신호 대기 줄, 심지어 골목길 주차장에서도.
"저기 또 있다!"
남편과 딸이 웃으며 외쳤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바더-마인호프 현상(Baader–Meinhof phenomenon), 또는 빈도 착각(frequency illusion)이라고 부른다.
특정 대상—이를테면 Urban Gray 차—에 관심을 가지면, 뇌가 무의식적으로 그 정보를 더 잘 포착한다.
그래서 갑자기 세상에 그 차가 많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차가 늘어난 게 아니다.
달라진 건 우리의 시선이다.
곱씹어보니,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첫사랑 때는 모든 노래가 사랑 노래로 들렸고,
부모가 되었을 때는 유모차와 아기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세상은 늘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내 시선의 각도였다.
집으로 오는 길, 딸이 문득 말했다.
"이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게 그렇게 되는 거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불만을 찾으면 불만이 보이고,
가능성을 찾으면 가능성이 보인다.
시선이 부정에 머물면
세상은 무채색으로 흐려지고,
긍정에 머물면
그 무채색조차 새로운 빛을 띤다.
집 앞에 새 차를 세워두고 바라보았다.
Urban Gray는 색 이상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필터이자, 마음가짐의 은유다.
늘 거기 있었지만,
내가 마음을 열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
세상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어디에 눈길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삶은 어쩌면 Urban Gray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빛에 따라,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색.
무심히 흘려보내면 그저 평범한 풍경일 뿐이지만,
마음이 색을 입히는 순간,
나만의 작은 기적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선이 긍정을 향할 때,
세상은 비로소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색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