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자는?
뉴스에서 미국과 한국의 관세 협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우리 집 거실이 떠오른다. 딸이 타주에 살아 자주 보긴 어렵지만, 셋이 모이면 어김없이 '습관 협상'의 무대가 펼쳐진다.
국가 간 무역 협상처럼, 우리 집에서도 각자 믿는 구석과 무기를 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목표는 단 하나. 손해는 덜 보고, 이익은 더 챙기는 것. 상대의 약점을 아는 자가 진짜 강자다. 특히 그 약점이 사소한 버블티나 목공 도구라면, 협상은 한층 유쾌해진다.
첫 번째 플레이어는 딸. 우리 집의 '화장실 해일 제조기'다.
집에 올 때마다 세면대와 바닥을 물바다로 만든다.
"다음 사람 생각 좀 해라!" 하면, 늘 느릿하게 말한다.
"알았어, 나중에…"
하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다행히 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버.블.티.
'세면대 안 닦으면 버블티 안 사준다?" 이 한마디면 게임 끝이다.
나이가 몇인데, 게다가 연봉도 집에서 제일 많으면서
그 흔한 음료 하나 앞에선 영혼이 탈탈 털린다.
어쩜 그리 순식간에 허리를 굽히는지.
참 단순해서 더 웃기고 귀엽다.
딸의 무기는 독보적인 존재감이다.
단 한마디로 협상판의 공기를 바꾼다.
가끔은 "안 놀아준다"는 어이없는 말로 우리를 협박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남편. '뒷마무리의 적'이자 만능 장인이다.
과자 봉지는 뜯어만 놓고, 뭐든 시작만 하고는 뉴스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무기는 셰프급 요리 실력과 손재주.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나 멋진 소품들을 뚝딱 만들어낸다.
문제는 목공 도구에 대한 끝없는 갈망.
"자꾸 잔소리하면 만들어달라는 거 안 만든다"는 협박도 가끔 날아오지만, 도구 구매는 내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의 약점은 내가 쥐고 있다.
마지막은 나. 집안의 '빨리빨리 장군'이자 재정 담당자다.
누가 굼뜨면 "내가 할게!" 하고 일을 떠안고, 그러고는 꼭 투덜댄다.
내 무기는 가정의 재정 통제권.
용돈, 외식, 빼꼼이 간식, 딸의 버블티, 남편의 목공 도구까지 모두 내 손에 달려 있다.
딸이 타주에 살아 셋이 모이는 건 1년에 2-3번 정도.
하지만 거실에 앉는 순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다.
국가 간 관세 협상처럼, 각자 이익을 극대화하려 치밀한 계산이 오간다.
딸은 버블티를 원하고, 남편은 목공 도구를 노리며, 나는 집안 평화를 목표로 테이블에 앉는다.
빼꼼이는 꼬리를 흔들며 중재자 역할을 하지만, 딸이 그를 안고 "버블티 마시러 같이 가자?!"라고 귀여운? 공세를 펼치면 판이 흔들린다.
한 번은 이런 대화가 오갔다.
딸: "이제부터 화장실 물기 잘 닦을게. 대신 오늘 월남쌈 먹고 싶어."
남편: "월남쌈? 그럼 내가 만들지. 근데 여보, 당신도 좀 느긋해져. 자꾸 바쁘게 굴면 내가 더 정신없어."
나: "알겠어. 근데 당신이 먼저 뒷정리 좀 제대로 해줘야 나도 좀 쉴 수 있지."
남편: "알았어, 먼저 할게. 그럼 나 그 카빙 칼 주문한다."
협상의 핵심은, 믿는 구석과 약점을 얼마나 잘 공략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이 조선업, 반도체, 배터리로 협상력을 높이듯, 우리 집도 각자의 무기로 판을 주도한다.
딸은 버블티 앞에서 무너지고, 남편은 도구 구매를 위해 내 허락을 구해야 한다.
남편의 요리와 목공은 실질적인 결과물로 나를 움직이고,
딸의 '놀아줄게'는 감정의 균형을 잡는다.
빼꼼이의 꼬리 흔들기는 협상의 긴장을 풀어주는 숨은 카드다.
뉴스를 보니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협상은, 진행형이다.
버블티와 목공 도구가 있는 한, 협상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