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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금양이

쿠션 위에 삶

by Susie 방글이




우리 언니는 고양이 밥 주려고 출근하는 사람이다.


"나? 고양이들 사료값 벌려고 일하는 거야."

이 말이 언니 입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늘 고양이 사료로 직행한다.

사람 간식은 안 사도, 고양이 간식은 '휴먼 그레이드'로 고른다.

"애들이 요즘 입맛이 까다로워."

언니는 그렇게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웃음 속엔 책임감이 있다.

언니가 돌보는 고양이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다.

아파트 주변을 돌며 길냥이들의 밥을 챙기고 건강 상태도 수시로 살핀다.

몸이 아픈 아이가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고, 중성화 수술도 시켜준다.

회복하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우리 품에서 잠시 머물다, 자연의 품으로 다시 보내는 마음

이쯤 되면 동네에선 고양이계 마을 이장쯤 되고 언니를 알아보는 아파트 주민들도 계신다,

"아, 고양이 밥 주시는 분이죠?"

캣맘인 언니는 어느새 동네의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밥 줄 시간이 되면 고양이들이 골목 곳곳에서 슬금슬금 모여든다.

언니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풍경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찡한 마음이 더 크다.

고양이들끼리 "엄마 온다, 엄마…"속삭이는 것만 같다.

비 맞아도 괜찮아, 밥이 먼저니까!
잠시 멈춰 쉰다, 햇살도 바람도 우리 편이니까.
기다림 끝에 만난 한 끼, 오늘도 살아낸 길 위의 고양이들

집에는 이미 두 녀석이 있다.

솜이, 폴이.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연히 언니 눈에 띈 순간 운명이 바뀌었다.


이제는 쿠션이며 방석이며 몸 편히 기댈 수 있는 자리들이 마련된 집에서 산다.

어디에 누워도 푹신하고, 사료도 특별 간식도 제공된다.

언니 옆에서 걱정 없이 잠든다.

길 위의 삶은 몰라요… 우리는 이불속이 집이에요.
우리, 늘 이렇게 같이 있자
폴이의 세상 제일 좋은 자리는, 솜이 누나 옆자리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전엔 그냥 스쳐 지나쳤던 길냥이들이

요즘은 더 눈에 밟힌다.


해질녘 어둑한 길 가에, 또는 차 밑에 쪼그리고 있거나,

먹이를 찾아다니는 고양이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한참을 서서 애들한테 말은 건네보며,

집에 있는 솜과 폴을 떠올린다.


"무엇이 이 둘의 운명을 갈랐을까?"


같은 고양이인데, 누구는 좋은 사료 먹고, 아늑한 집에서 호강하며 살고

누구는 여기저기 먹이를 찾아 헤맨다.

고양이를 보다 보면 사람의 삶이 겹쳐진다.

우리도 어쩌면 길 위의 고양이처럼,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누구를 만났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갈라진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때론 부유한 집 쿠션 위에서나 하는 등 따습고 배부른 소리 같다.

길 위엔, 쿠션도 간식도 이름 불러줄 사람도 없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표와 보험과 지붕을 가지고 시작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겨울을 넘기기 위한 몸부림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 동기가 있어야만 삶이 바뀌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한 번의 '눈 맞춤',

"밥 먹었니?"같은 말 한마디,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그 순간.


그 작은 관심 하나가 길 위를 떠돌던 마음을 붙잡고,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나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언니 덕분에 이젠 길에서 고양이를 보면 잠시 멈춰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고양이와 사람이 언니 같은 따뜻한 손길,

이름을 불러주는 우연 하나쯤은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 작은 트렁크 안에 담긴 건, 수많은 생명에 대한 마음입니다.
여기 실린 건 밥이 아니라 '기다림에 대한 응답'입니다 (365일, 차 트렁크 안은 길양이 밥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멈출 수 없는 일, 언니는 오늘도 밥을 챙긴다.


#길고양이 #반려동물 #따뜻한 시선 #일상에세이 #고양이이야기 #삶의 우연 #돌봄 #운명의 차이 #캣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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