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갈림길에서 맛본 이야기
남편은 20대에 배낭 하나 메고 2달간 미국 여행을 떠났었다.
'예쓰'와 '쏘리'는 자신 있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미국 곳곳을 누비며 배낭여행을 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유학 준비를 해서 다시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남편이 미국땅에 처음 발을 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세웠다.
바로 스파게티 스파게티, 그리고 또 스파게티.
맥도널드 햄버거와 한 맺힌(?) 바나나만 주야장천 먹고 다니던 남편이 큰맘 먹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아주 큰 곤욕을 겪고 난 후,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메뉴판을 훑지도 않고, 무조건 스파게티.
마치 스파게티가 미국의 유일한 식량이라도 되듯이.
미국에서는 웬만한 식당에 스파게티는 한국의 김치찌개와같으니까.
화려하지도 않고 심플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미트소스 스파게티
이 한 접시의 파스타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에서 그가 살기 위해 붙잡은 구명줄이었다.
한국에서 자란 남편에게는 식당은 단순하다.
메뉴판은 불가침 영역처럼 신성하다.
비빔밥을 주문하면 비빔밥이 나오고, 김치찌개는 김치찌개로 나온다.
웨이터가 '고추장 또는 고춧가루를 더 넣을까요?' 라며 당신의 창의력을 테스트하지 않는다.
메뉴는 그 식당의 법.
질문? 필요 없다. 그냥 주문하고 나오면 먹으면 된다.
그런데 미국은 달랐다.
미국 식당은 메뉴 판을 주면서 윙크한다.
메뉴판은 마치 캔버스 같다.
"자 맘대로 바꿔"
웨이터는 묻는다.
계란은 어떻게 할까?
스크램블? 써니사이드업? 오버이지? 오버미디엄?
빵은?
화이트? 호밀? 아님 통밀?
사이드는?
감자튀김? 샐러드? 코울슬로?
드레싱은?
블루치즈? 랜치? 이탈리안?...
남편은 패닉에 빠졌다.
이건 식사 주문이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요구하는 심문이었다.
그래서 찾은 전략.
스파게티.
그 단어 하나면 주문 끝이다.
면의 익힘 정도를 묻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덕분에 지금도 스파게티만 보면 그때얘기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아~ 내가 미국 식당 처음 들어갔을 때 말이야..." 이러면서.
남들이 먹던 맛있게 보이는 음식들은 결국 오래전 이민을 온 친구를 만나 한을 풀었다고 한다.
솔직히 그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셀 수도 없지만,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웃기고 또 웃긴다.
그 시절 남편의 우왕좌왕 미국 생활이 떠올라 정겹다.
Spaghetti with meat sauce
지금은 Bolognese라고 하기도 한다.
남편은 아직도 스파게티를 좋아해서,
지금도 여전히 식당 가면 주문한다.
남편에게 맛집의 기준은 스파게티를 얼마나 맛있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자,
이 스파게티 드라마는 미국의 개인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취양과 선호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식당에서 손님이 메뉴를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은 미국 문화의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상징한다.
계란 익힘 정도, 스테이크 굽기, 빵 종류, 드레싱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심지어 메뉴에 없는 음식도 때로는 주문할 수 있다.
손님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설계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라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 연결된다.
그 반면 한국에서는 개인의 선호보다 공동체의 규범이나 표준이 중요시된다.
한국 식당에서 메뉴가 정해진 대로 나오는 것은 한국 문화의 집단주의와 전통을 반영한다.
메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식당이 '최적의 조합'을 이미 결정했다고 믿는
문화적 관습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손님은 세프나 식당의 의도를 존중하며 그 경험을 그대로 받아 드린다는 것이다.
한국음식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하며,
김치찌개나 비빔밥은 그 식당의 정해진 방식으로 제공된다.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를 잘 따른다던지,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는 등.
특정한 문화나 취향을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때로 문화적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남편처럼 한국 식당에 익숙한 사람은
미국 식당의 수많은 선택지에 압도당할 수도 있고,
반대로 미국인은 한국 식당의 고정된 메뉴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에는 두 문화가 점점 융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카페나 브런치 식당에서 커스터마이징 옵션이늘어나고 있고,
미국에서도 K-푸드의 전통적 제공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결론은,
한국의 메뉴 중심 문화는 집단주의, 전통, 신뢰를.
미국의 커스터마이징 문화는 개인주의, 다양성, 자유를 상징한다.
이는 음식 주문 방식을 넘어 사회적 규범, 개인의 역할,
선택의 자유에 대한 두 나라의 근본적인 철학을 보여준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각 문화의 고유한 매력과 그 이면에 숨겨진 철학적 가치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남편의 스파게티 요리실력은 미슐랭 스타 맛집 못지않다. 내가 먹기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