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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마케터의 생각을 리부트 하는 이야기

by 서양수


차별성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하루에 수천 개의 브랜드를 마주한다. 출근길 지하철 광고판부터 손 안의 스마트폰 알림까지, 브랜드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애쓴다. 그중 일부는 기억되며, 아주 드물게 폭발적 반응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소비자의 기억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진다. 이것이 오늘날 브랜드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걸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대답한다. "차별적 가치를 제공하는 브랜드가 성공한다." 테슬라처럼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내놓거나,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브랜드라면 당연히 고객의 열광을 얻을 것이다. 실제로 테슬라 오너들 중 상당수가 스스로를 '테슬람'이라 부르며 브랜드에 종교적 헌신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 예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로 진정 차별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웬만한 것들은 이미 세상에 다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것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무한동력), 비용이 천문학적이거나(하늘을 나는 자동차), 제도적으로 막혀 있거나(환각 약품), 혹은 만들어봤자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성숙기 시장에서는 제품 간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과거 제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의 코끼리 밥솥이나 소니 워크맨은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우리 손에서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조차 2024년 모델과 2025년 모델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삼성과 애플의 플래그십 제품조차 성능 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사라졌다. 성숙기 시장에서는 이렇듯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며 차별성이 부각되기 어렵다.



바로 여기에 마케팅의 진짜 전쟁이 펼쳐진다.


제품 그 자체로 차별화할 수 없을 때, 마케터의 역할이 결정적이 된다. 제품을 제품 그 이상으로 포지셔닝하고, 고유한 감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케팅이 가진 힘이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본질은 '제품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케팅이 일관성을 갖고 오랜 시간 축적될 때, 비로소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만들어진다. 브랜드가 마치 인격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며, '저 브랜드라면 믿을 만해', '저 브랜드라면 나를 표현하기에 충분해'라는 신뢰가 생기게 될 때, 브랜드는 성공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브랜드 경험이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더티 플레이팅'을 두고 어떤 이는 힙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이는 정돈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움과 깔끔함 중 무엇을 선호할지는 온전히 고객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지, 어떤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지 제시하는 것은 오로지 '브랜드의 역할'이다. 결국 브랜드는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 당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건넬 수 있다.


이 메시지가 또렷할수록 브랜드는 강력해진다. 공감하는 사람들은 열렬한 팬이 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명확히 돌아선다. 이 둘 다 나쁘지 않다. 진짜 문제는 브랜드의 색깔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태, 시장에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흐릿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국 마케팅이란, 시장에 우리만의 색깔과 가치를 선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 활동이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펼치는 모든 마케팅 활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분명한 의도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의도성을 통해 실행된 마케팅의 결과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캠페인은 성공하고 어떤 캠페인은 실패한다. 어떤 것은 고객의 선택을 받고, 또 어떤 것은 외면당한다. 물론 성공의 결과를 만드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마케터에게 성패 그 자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왜'를 아는 것이다. 어떤 의도로, 어떤 전략으로 그 캠페인을 설계했는지 이해하는 것. 성공했다면 어떤 요인이 작동했는지, 실패했다면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파악하는 것. 우리는 한두 번의 캠페인으로 빵 터뜨리고 사라질 갬블러가 아니다. 브랜딩을 지속하고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브랜드 매니저이다. 따라서 직업으로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성공과 실패보다 더 중요한 것을 좇아야 한다. 그건 바로 성공 혹은 실패의 원인과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싸움에서의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2025년 가장 주목받은 마케팅 캠페인을 해부하고, 그 이면에 숨은 전략과 의도를 파헤치는 것. 마치 바둑기사들이 대국 후 한 수 한 수 복기하듯, 부검의가 망자의 사인을 찾아내듯, 우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분석할 것이다.


팔란티어의 성수동 팝업은 어떻게 B2B 기업이 B2C 감성 마케팅을 성공시켰는지. 우버의 브랜드 필름은 무엇을 노렸는지. OpenAI가 슈퍼볼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치토스와 넷플릭스의 콜라보는 어떤 시너지를 만들었는지. 셀리스의 경험 마케팅은 무엇이 달랐는지 등의 사례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례만으로는 부족하다. '선택의 역설', '소비 본능' 같은 이론적 백그라운드가 없다면, 우리는 표면만 훑고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최신 사례와 마케팅 이론을 적절히 조합했다. 사례를 통해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확인하고, 이론을 통해 실무 캠페인을 설계할 수 있는 기초 근육을 기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목표다.


마케터들에게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책이 오늘도 마케팅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마케터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그리고 다음 캠페인을 설계할 때 조금 더 명확한 시야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 이제 브랜드 전쟁의 최전선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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