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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초롱』 서시」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슷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틈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2025.9.16. 고결한 넋을 굽어보는 하늘과 그 따스한 눈길을 알아보는 벗이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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